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성찬

삼박자가 맞다는 말은 음악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서너 가지가 잘 어우러져 궁합이 맞았을 때도 쓴다. 호흡이 맞는 몇 사람을 두고도 말할 수가 있고, 함께 먹으면 영양가를 높일 수 있는 음식이 될 수도 있으며 분위기에 어울리는 재치 있는 대화를 두고도 쓸 수 있는 말이다. 얼마 전에 이 세 가지를 두루 아우르는 풍성한 성찬의 자리를 경험한 적이 있다.

지인을 따라 우연한 식사자리에 끼게 되었다. 서너 명 정도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시작했는데 입담 좋은 지인이 한 사람씩 불러 모으는 바람에 결국은 직업이 다른 열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자기 소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상이 공동 화제가 되었다. 대체로 관상은 사람의 직업과 닮아 있었다. 관상이 화제가 되다 보니 사람들 각자의 내력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분위기는 마치 인물의 성찬 자리가 된 것 같았다.

그때쯤 음식이 나왔다. 그 옛날 임금에게 진상을 했다는 미나리와 언양 불고기는 하얀 접시 위에서 푸른 잎을 두른 목단화로 피어 있었다. 꽃갈빗살은 뼈만 발라내는 '발골' 과정과 지방을 적당히 붙여서 일정한 두께로 잘라내는 고난이도의 '정형' 과정에서 피운 꽃이라 하겠다. 또, 단물이 오른 배와 속속들이 몸을 섞은 육회는 진홍색 수국으로 피어 흥분된 미각을 터질듯이 자극했다.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끌어당기는 이 음식들을 어찌 성찬이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모두들 허기졌던 눈과 배를 정신없이 채웠다. 술잔이 오가면서 첫 만남으로 어둑어둑했던 부분을 대화 등으로 하나씩 밝혀 나가니 허했던 정신까지 환해졌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는데 슬슬 음식값이 걱정되었다. 차려진 음식을 보았을 때 적지 않은 금액일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그때 관상이 가장 좋다는 의사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조각가, 그리고 사업가까지 이어졌는데 그야말로 말의 성찬이었다.

"오늘 고기는 제가 다 사겠습니다."

"아, 그러면 술병은 제가 다 사겠습니다."

"아하, 그렇다면 이 분위기와 사람은 제가 모두 사겠습니다."

재치 있게 오고가는 말들이 기분 좋은 계산을 하도록 만들었다. 음식의 성찬이든 말의 성찬이든 사람의 성찬이든 가장 우선적인 것은 맛깔스러워야 한다. 그것은 보기에 좋아야 함은 물론이고 분위기에 맞아야 하고 구색도 잘 갖추어져야 한다. 개성이 넘치는 다양한 사람들과 재치 넘치는 말솜씨와 좋은 음식은 성찬의 삼박자가 맞았던 셈이다.

성찬이 담고 있는 풍성이라는 의미 속에는 넉넉함이 기본임을 알았다.

주인석(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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