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에 점 하나 잘못 찍혔을 뿐인데 글 전체의 뜻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에 나는 영화 '록키 발보아'에 관하여 간단한 글을 쓰면서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저런 점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록키 밟아가 필라델피아 시립미술관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 두 팔을 치켜드는 장면은 늘 반복되지만 나쁘지 않다.' '발보아'를 '밟아'로 오타 낸 것이다. '밟아가 계단을 밟다.' 래퍼가 노랫말에 각운을 새긴 것 같은 그 오타는 맞춤법 검색에 안 잡혔기에 버젓이 종이에 찍혀 나왔다. 정말 부끄러웠다.
내 실수도 민망한데, 남의 실수 또한 기분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어떤 화랑에서는 전시 때마다 내게 인쇄물을 보내주는데, 받는 이의 이름은 윤규홍이 아니라 윤구홍이다. 매번 그 성의는 고마운데, 우편물을 받아든 내 기분은 묘하게 설명이 어려운 지점으로 치닫곤 한다.
사람 이름 뒤에 붙는 직함도 마찬가지다. 지금 여기엔 '문화평론가'라는 두루뭉술한 호칭이 붙어있다. 내가 그러자고 고집한 건데, 이것저것 생각은 많지만 막상 아무것도 제대로 평론 못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좀 더 학술적인 자리에서 나는 내 전공에 사회학이론이나 예술사회학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런데 한 번은 예술의 ㄹ을 빼고 예수사회학으로 표기됐다. 종교사회학에서 특화된 전문 분야를 파고드는 개척자의 풍모가 느껴졌다.
어떤 포럼에서 미술 정책에 관한 발표자로 나섰는데, 그 다음날 신문 기사에 윤규홍(분노 갤러리 아트디렉터)로 보도되었다. 잘못된 미술 정책을 비판하는 데는 확실히, 분도 갤러리보다 분노 갤러리가 더 그럴듯하다. 만약 분노 갤러리란 곳이 실제로 있다면, 그곳에서는 케테 콜비츠나 박불똥의 그림만 항상 전시할 것 같다.
고백하는데, 직함을 내가 일부러 바꿀 때도 있었다. 내가 일을 맡은 한 잡지의 편집 주간이란 명칭을 편집장으로 소개하곤 한다. 사람들이 편집 주간이란 용어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그 점보다는 편집장이 더 멋져 보여서 그랬다. 나는 편집장이라고 하면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오는 매력적인 바람둥이, 다니엘 클레버(휴 그랜트)가 떠오른다. 이에 반해 편집 주간은 '스파이더맨'에서 팔 토시를 끼고 소리만 질러대는 신문사 주간이 먼저 생각난다.
내 생각에, 오타는 발견될 때마다 즉시 바꿔야 한다. 오류가 생긴 글은 그 텍스트의 인용이 거듭되면서 진리로 굳어진다. 고의든 실수든 잘못된 기록은 시간이 흘러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교조적인 진실로 둔갑한다. 그건 그렇고, 이글에도 왠지 오타가 섞여 있을 것 같다.(발견되면 꼭 연락 주세요, 제 메일 주소는 klaatu84@dreamwiz.com입니다.)
윤규홍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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