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디 특종 없나요"…실버넷 뉴스 실버기자단

79세 데스크, 68세 기자…황혼에 펜을 든 어르신들

실버세대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실버넷뉴스 대구경북지부 기자들.
실버세대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실버넷뉴스 대구경북지부 기자들.
실버넷뉴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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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회 곳곳에서 어르신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실버세대들의 사회 진출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나이 들었다고 뒷짐 지고 점잔 빼는 것은 더 이상 이 시대 어르신들의 자화상이 아니다. 어르신들의 활동상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도 어르신들이 하고 있다. 바로 실버넷뉴스 '기자들'이다. 실버세대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실버넷뉴스 기자들을 만났다.

◆평균 연령 70세…제2의 인생

실버넷뉴스 대구경북지부에는 총 10명의 기자가 있다. 연로하신 어머니 간호를 위해 전필득(63·여·대구 중구 대신동) 기자가 활동을 잠시 중단한 까닭에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는 기자는 9명. 이들의 평균 연령은 70세다. 은퇴한 뒤 기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의 경력은 화려하다. 김춘원(79·대구 북구 태전동) 부장, 민경화(74·안동시 풍산읍)·류기환(68·남구 대명11동)·주종빈(72·달서구 상인1동) 기자는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은 교육계 인사다. 김춘원 부장은 1997년 구미 덕촌초교 교장, 민경화 기자는 1999년 안동 풍산초교 교장, 류기환 기자는 2005년 구미 인의초교 교장, 주종빈 기자는 1998년 도원중 교감을 끝으로 정들었던 교단을 떠났다.

민 기자는 현재 안동자원봉사자 노인회장, 청송교도소 교정시민자문위원장도 맡고 있다. 류 기자는 지난해 시인으로 등단해 월간 한맥문학·공무원문학회·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텃밭문학 고문 겸 이사도 맡고 있다. 또 은퇴 후 노인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해 경로당·양로원 등을 다니며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내년에는 첫 시집도 발간할 예정이다.

김성근(74·안동시 안기동) 기자는 40년간 한국철도공사에 근무했다. 한국철도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1996년 퇴임하면서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3년 전국노인인터넷경진대회 전국 대상, 2006년 어르신인터넷과거시험 경북 대상을 차지할 만큼 탁월한 컴퓨터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신후식(63·대구 북구 산격2동) 기자는 경북도 공무원(서기관) 출신이다. 경북대에서 행정학 박사를 받을 만큼 공부하는 공무원으로 유명했다. 행정뿐 아니라 역사와 문학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1986년 시조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시조집 6권을 비롯해 경상도 관찰사 명부를 번역한 사료집 등 지금까지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상임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지역사자료조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김점란(72·여·대구 동구 신천1동) 기자도 공직에 몸담은 경력이 있으며 전태행(64·여·수성구 지산1동) 기자는 10년 동안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해 온 자원봉사자다. 해병대 출신인 황진국(71·구미시 무을면) 기자는 현재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이 기자가 된 경위는 의외로 간단하다. 김춘원 부장을 비롯해 민경화 기자, 신후식 기자, 김성근 기자, 전태행 기자는 컴퓨터를 배우다 실버넷을 접한 것이 계기가 돼 기자가 된 경우다. 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쳤던 주종빈 기자는 은퇴 후 성균관에 교육을 받으러 갔다 실버넷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자 모집에 응시한 케이스다. 류기찬 기자는 동료 문인의 소개로, 김점란 기자는 김춘원 부장의 권유로 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

◆글쓰기, '너무 힘들어요'

실버넷뉴스 기자들은 한결같이 기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어느날 갑자기(?) 기자가 된 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글쓰기. 여느 언론사 기자와 마찬가지로 실버넷뉴스 기자도 수습기간을 거친다. 3개월 수습기간에는 수시로 취재 과제가 나온다.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 제출하면 어김없이 보충 취재 지시가 떨어진다. 나이가 많다고 대충 넘어가는 법은 없다고 한다.

수습을 뗀 뒤에도 글쓰기 고통은 계속된다. 초년 기자가 작성한 글은 부장-부국장-국장으로 이어지는 데스킹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기사화가 된다. 대부분 다시 기사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는다고 한다. 재작성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함량 미달이면 어김없이 기사는 폐기처분된다. 또 모든 기자들은 6개월마다 기자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기자 재교육은 KBS,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에 근무하는 자문위원들이 한다.

신후식 기자는 "나이가 들면 순발력이 떨어진다. 젊은 사람들에 비해 몇배 더 노력해야 한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류기환 기자는 "독자 입장일 때는 글쓰기의 고통을 몰랐다. 기자가 돼 보니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게 됐다. 수습기간에는 밤새도록 원고를 끌어안고 고민한 날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열정은 '젊은이급'

실버넷뉴스 기자들은 1인다역을 해야 한다. 취재를 하면서 사진도 찍고 인터넷을 통해 기사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실버넷뉴스가 기자를 모집할 때 취재 능력뿐 아니라 사진 촬영 능력과 컴퓨터 활용 능력을 고루 평가하는 이유다.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성근 기자는 요즘 사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예전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는데, 기자생활을 하면서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민경화 기자는 컴퓨터 공부를 오랫동안 한 덕분에 안동일자리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강사로 봉사 활동을 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일 앞에서는 몸도 사리지 않는다. 김춘원 부장은 강직성척추염으로 고생을 하고 있지만 지난달 29, 30일 대구은행연수원에서 열린 대경시니어포럼 제7차 리더십캠프에 참가해 1박2일 동안 취재하는 열의를 보였다.

실버넷뉴스 기자의 가장 큰 강점은 다양한 이력. 이들이 쌓은 풍부한 경험은 취재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전문적인 취재 영역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다. 김성근기자는 지난해 한국철도 110주년을 맞아 철도 변천사에 대한 기사를 20편 시리즈로 연재했다. 김춘원부장과 신후식 기자는 각자 교직과 시조 시인이라는 경력을 살려 교육과 문화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돈보다는 일'

실버넷뉴스 기자는 무보수 봉사직이다. 그런데도 기자를 모집하면 지원자가 넘쳐난다. 지난해 30명의 기자를 뽑는데 지원자가 200명 이상 몰려 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3차례 걸쳐 실시되는 취재 능력 평가와 면접을 통과해야 기자가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지원자는 늘고 있다. 지원자가 늘면서 지원자의 자질도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기자가 되는 과정도 힘들고 보수도 없지만 어르신들이 기자가 되기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을 한다는 자제가 즐겁고 기자로서 보람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신후식 기자는 "기사를 보고 감사의 메일을 받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자신이 쓴 글이 기사화돼 인터넷에 올라가고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보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환도 있다. 기존 언론에 비해 매체 영향력이 적어 취재 거절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또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메모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오해도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애환도 일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들은 기꺼이 무보수로 봉사할 수 있다고 한다.

◆기자상은 가장 큰 보람

실버넷뉴스는 자체적으로 이달의 기자상, 올해의 기자상을 선정해 발표한다. 무보수로 일하는 실버넷뉴스 기자들에게 상은 노력에 대한 일종의 보답인 셈이다. 대구경북지부 기자들 가운데 상을 수상한 사람은 신후식 기자와 김성근 기자다. 신후식 기자는 지난해 올해의 기자상, 김성근 기자는 올 6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지난해 실버넷뉴스에 들어온 류기환 기자는 현재 이달의 기자상 수상 후보에 가장 근접해 있다. 왕성한 취재력으로 양질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류기환 기자는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보상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실버넷뉴스 기자에게 최고의 보상은 상을 타는 것이다"고 말했다.

◆달라진 노년생활

대구경북지부 기자들은 기자가 된 이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 김점란 기자는 "기자가 되고 난 이후 같은 연령대 친구들에 비해 사물을 볼 때 깨어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춘원 부장은 "어디를 가더라도 수첩과 카메라를 챙기고 행여 기사 거리라도 얻을까 싶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도 생겼다. 행여 지탄을 받지 않을까 염려돼 몸가짐도 조심스러워졌으며 취재를 위해 숫기도 생겼다. 생활에 활력이 생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실버넷뉴스

실버들이 실버를 위해 제작하는 인터넷신문으로 2002년 출범했다. 정치·상업·종교 편향적인 색채를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실버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춰 보도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전국에 156명의 기자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활약 덕분에 실버넷뉴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실버언론으로 자리 잡았다. 실버넷뉴스( http://www.silvernews.or.kr)는 출범 후부터 매년 기자를 모집하고 있다. 만 55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내년 2월 28일까지 제9기 기자를 모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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