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기 어린 아이들의 얼굴이 무대에 올라서자 진지하게 변했다.
바이올린과 첼로, 플루트를 잡은 학생들은 지휘자의 손놀림과 동시에 '넬라 판타지아' 협주곡을 연주했다. 엇박자가 터져 나오고, 중간에 연주가 끊기기도 했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박수로 응원했다. 2시간의 공연을 위해 석 달 동안 구슬땀을 흘린 아이들의 '불협 화음'은 완벽한 하모니보다 더 큰 감동을 선물했다.
8일 오후 5시 대구 동구 방촌동 GS프라자호텔 대연회장에서 '희망음자리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봄맞이 공연이 열렸다. 이 오케스트라는 대구 동구지역 6개 학교(동촌초, 입석초, 동촌중, 신암중, 아양중, 입석중)의 학생 60여 명으로 구성됐다.
학생들은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아 2009년 4월부터 무료 방과후학교 수업 시간을 통해 기량을 닦았다. 이 오케스트라가 대중 앞에서 공식 연주를 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 오케스트라 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대구 아양중 서은혜(35'여) 교사는 "희망음자리 오케스트라는 베네수엘라의 복지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1975년 설립된 엘 시스테마는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통해 꿈을 키워줬고 현재 LA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인 '구스타보 두다멜'을 비롯한 세계적인 음악가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아이들은 '돈이 있어야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고 있다. 경제적 부담없이 악기를 잡았고 이곳에서 음악가라는 새로운 꿈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는 것이다.
강하은(13) 양은 "오케스트라에 들어오기 전에는 바이올린 활을 잡는 법도 모를 만큼 음악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꼭 바이올린 연주자가 돼야겠다는 꿈이 생겼다"며 활짝 웃었다.
임호빈(16) 군도 "중학교를 졸업하면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인데, 희망음자리가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됐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아이들을 한데 묶었다. 이날 첼로를 연주한 김은주(16) 양은 "음악 연습을 하면서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만나 친해질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나 함께 연습하다 보니 가족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음악은 굳게 잠겨있던 아이들의 마음의 문도 열었다. 이날 딸의 공연을 보러온 김애순(41'여) 씨는 "우리 딸은 오케스트라 초기 멤버다. 음악을 시작한 뒤 평소 조용했던 아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활발한 성격이 됐다"고 자랑했다.
그 때문에 희망음자리 오케스트라와 같은 음악 교육 사업이 고등학교에도 확대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희망음자리 오케스트라 서은혜 지도교사는 "자신감 없이 학교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음악을 접한 뒤 사교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희망음자리는 고교생의 참여는 받지 않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음악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이들의 꿈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라도 고교까지 연계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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