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군 50명 전사…북한군 3800여명 사살 '빛나는 戰功'

최대 격전지 기계·안강…적 부산 침공 봉쇄기켜

경주시 옥산동 어래산 정상에 서 있는 기계안강지구 승전비. 이곳의 전투는 주인이 15차례나 바뀔 정도로 치열했다. 이채근기자
경주시 옥산동 어래산 정상에 서 있는 기계안강지구 승전비. 이곳의 전투는 주인이 15차례나 바뀔 정도로 치열했다. 이채근기자

기계·안강은 그 지리적 특성상 6·25 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 중 하나로 꼽힌다. 동쪽으론 포항, 서쪽은 영천, 남쪽은 경주가 위치하고 있어 부산 공격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북한의 주력부대가 이 곳 공략에 투입됐음은 물론이다.

전선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영천~안강~포항을 동서로 연결하는 하나뿐이었다. 김일성은 평양방송을 통해 "8월15일까지 한국군과 미군을 최후의 한명까지 섬멸하고 부산을 해방시키라"고 명령한 뒤 적 12사단, 15사단, 5사단, 766유격부대(동해안 빨치산부대)를 기계·안강 포항지구에 투입, 속칭 8월 대공세를 펼쳤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우리 군은 김백일 1군단장이 항공기를 타고 통신통을 투하하고 다니며 "기계·안강을 사수하라, 옥쇄를 각오하고 적을 격퇴하라"고 독전했다. 그만큼 기계·안강에서의 승리는 절대절명의 것이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포항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 방어에 나섰지만 가용병력이 모자랐다. 이 때문에 훈련이 안 된 학도병과 신병, 대한청년단원들로 구성된 병력을 투입했고, 이는 개전 초 의정부 방어전에서의 패배를 되풀이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북한군 12사단도 보급 부족으로 진격 속도가 떨어졌다. UN 해·공군의 쉴 틈 없는 후방공격으로 보급로가 끊겼기 때문. 이 틈에 8월 12일 제17연대가 안강에 도착해 안강-포항 도로를 차단했고 다음날 수도사단 제1연대와 제26연대도 안강에 속속 도착, 북한군의 경주 진출을 막았다. 수도사단 제18연대와 독립기갑연대가 기계 북쪽에서 북한군 후방을 차단하면서 순식간에 북한군 제12사단을 역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기계 일대에서 북한군에 대한 총공격이 시작됐다

하지만 9월초 안강을 점령당해 버렸다. 그달 중순 다시 형산강을 넘어 안강을 탈환한 국군은 안강 옥산동 동북방 562고지(어래산)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다. 이 고지를 점령하는 측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게 됐기 때문. 어래산 정상의 주인은 15번이나 바뀔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다.

10여 일간의 혈전에서 국군은 최소의 희생(50명 전사)으로 북한군 3천800여 명을 사살하고 309명을 생포했으며 전차를 비롯한 각종 장비 2천500여 점을 노획했다.

기계·안강 전투의 승리는 북한의 주력 부대의 부산 침투를 봉쇄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결국 북진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우리 전투사에 빛나는 전공으로 꼽힌다.

최정암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