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겨울이면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눈이 무릎까지 쌓여서 학교에 안 가는 상상을. 몽튼에서는 자주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눈의 나라 캐나다.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석 달 동안 내린 눈이 2m 높이에 달합니다. 이틀에 한 번꼴로 20㎝가량의 눈이 내렸습니다. 교회 지붕에 쌓인 눈이 녹으면서 고드름을 만들었는데 거의 땅에 닿으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이 정도의 눈이 내리면 난리가 나겠지만 몽튼에서는 눈으로 인해 교통이 마비되는 일은 없습니다. 제설 작업이 워낙 잘 되니까요. 도시의 주요 도로 및 주택가 큰 도로는 새벽부터 제설 차량이 다니며 눈을 말끔히 치워 놓습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보행로 역시 그 너비만 한 제설 기계가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눈을 치웁니다. 제설 차량이 밀고 지나가면서 만든 집 앞의 눈더미는 각 가정마다 개별로 계약한 제설 업체 사람들이 와서 해결해 줍니다.
이곳 사람들은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는 쇠삽 소리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러다 보니 삽 종류가 참 다양합니다. 얼음을 깨는 삽, 얼음을 긁어내는 삽, 눈을 구석으로 밀어내는 삽, 쌓인 눈을 퍼낼 때 쓰는 삽과 제설 소금(safe salt)은 가정에서 꼭 준비해야 하는 월동 장비이지요.
처음 캐나다에서 겨울을 날 때 아이들이 하도 눈을 치워보고 싶대서 식구 숫자대로 삽을 구입했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은 관리인이 눈을 치워주는데도 우리 가족들은 나가서 열심히 눈을 치웠답니다. 지금은 저 혼자 열심히 치우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에 눈이 오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눈이 얼마나 깨끗한지 눈더미에 도는 푸른빛을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눈이 많이 오면 번거로운 점도 많습니다. 윈터 타이어로 교체해서 운전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얼마 전에는 현관문 손잡이가 눈에 얼어붙으면서 고장 나는 바람에 20만 원을 들여 고치기도 했습니다. 건물 지붕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일도 있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지붕 위에 있는 얼음덩이가 녹으면서 떨어질 수 있어 지붕 아래를 다닐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겨울에는 부모들이 부지런해야 합니다. 아침마다 교육청에 등교 여부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작년 겨울, 학교에 간 딸이 교문이 닫혀 있다며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그대로 들고 말입니다. 눈이 조금 흩날리는 정도여서 학교에 보냈는데 이곳에서는 눈이 아주 조금 내려도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었습니다. 설령 아침에 눈이 오지 않더라도 오후에 눈이 올 가능성이 있으면 휴교를 합니다. 하굣길 아이들 안전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곳 부모들은 하늘이 흐리거나 눈이 조금이라도 오기 시작하면 날씨 방송을 보면서 예상 적설량을 확인하고 당일 아침에 교육청에 전화를 걸어 휴교인지, 아닌지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이제 제 아내가 은근히 휴교이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안 가면 아침 일찍부터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어쨌거나 겨울에 신나는 건 아이들입니다. 뒤뜰에 쌓인 눈에 굴을 파기도 하고 집 뒤에 눈썰매장이랑 이글루를 만들어 놉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눈을 구경해 본 적이 없는 아들 녀석은 좋아서 까르르 넘어갑니다. 감기에 걸려 콧물을 훌쩍거리면서도 자꾸 밖에 나가자고 엄마를 졸라 댑니다.
아 참! 캐나다 눈사람은 정말 신기합니다. 한국에서는 눈사람을 2단으로 만드는데 캐나다 눈 사람은 3단입니다.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머리, 가슴, 배일까?' 아니면 '머리, 몸통, 다리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아직 궁금증을 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다 꼭 당근으로 코를 만들고 모자를 씌워주고 목도리까지 둘러줍니다.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눈사람이지요. 캐나다 아이들한테 왜 그렇게 만드는지 물었더니 이유는 얘기 안 하고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답니다. 이것도 문화의 차이인가 봅니다. 질리도록 눈 구경하면서 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겨울을 나고 있지만 한국의 삼한사온이 그립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질 때에는 따뜻한 갈비탕 국물이 먹고 싶어집니다.
khj09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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