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서울病과 지방植民地

다산 정약용은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집에 두고 온 아들들이 배움을 게을리할까 노심초사했다. 애타는 부정(父情)은 편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리고 그는 편지에서 서울에 살아야 하는 이유도 밝혀 오늘날 고질병이 된 서울 집착의 '서울병(病)'의 과거 모습을 보는 듯하다.

"운명의 수레는 재빨리 구르며 잠시도 쉬지 않는다. 대장부는 언제나 가을 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상을 가슴에 품고 있어 천지가 좁아보이고 우주도 내 손 안에 있는 듯 가벼이 여겨야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서울 문밖에서 몇십 리만 떨어져도 태고(太古)처럼 원시 사회라 서울 가까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자손 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 뜻을 두어야 한다."

과거를 통한 벼슬살이가 출세의 유일한 길이었던 조선 사회에서는 서울에 대한 집착이 유난했다. 1789년 정조 시절 서울 인구는 18만 9천153명. 전국 740만 3천606명의 2.5%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과 급제자 1만 2천792명 중 서울 출신이 5천502명(43.1%)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을 정도였으니 다산의 서울 고집은 당연했으리라.

이 때문에 외국인 눈에도 그렇게 비쳤다. 1894년부터 4차례 조선을 방문했던 영국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한국인들은 서울을 그 속에서만 살아갈 만한 삶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기록했다.(이원명 저,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의 연구'에서)

세월은 흘렀다. 그러나 서울병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이 블랙홀처럼 돈, 사람, 권력, 일자리 등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서울 언론들도 덩달아 서울 예찬에 나서 서울공화국화를 가속화하고 부추기고 있다. 지방은 철저히 왕따당하고 있다. 그래서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지방은 '내부식민지'(internal colony)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서울의 들러리 같은 지방 현실에 절망하고 "지방은 거지인가?"라며 절규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목을 매는 2천만 영남권 주민 여망을 짓밟는 서울 언론들의 무용론과 같은 최근 보도는 서울병적이고 서울 중심주의의 오만, 편견을 여지없이 드러낸 작태다. 지방도 한국이다. 지방민도 한국민이다. 지방은 이제 더 이상 서울의 식민지도, 거지도 아니다. 서울 언론이 이를 깨닫고 미망(迷妄)에서 깨어나길 바란다면 너무 순진한 걸까.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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