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도심의 기억과 추억

오랜만에 시내를 걸을 일이 있었다. 교동시장에서 납작만두와 순대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집에 가서 먹을 무침회를 포장한 뒤 수입 물건들이 즐비한 도깨비시장을 한 바퀴 휙 둘러본다. 아주 어릴 때 큰언니 손을 잡고 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교동시장을 나와 걸은 동성로는 예전과 많이 달랐다. 특히 대구읍성 위치를 표시하고 있는 바닥과 정비된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인위적이지만 도심에 대한 애정이려니 싶어 싫지는 않다. 허름했지만 내 예술적 영혼을 살찌워준 동성아트홀을 지나다가 동아백화점 쪽을 돌아본다. 다른 곳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움츠리고 앉아 노란 바나나를 팔던 할머니가 교차된다.

지하도를 통해 국채보상로를 가로지르면, 대구의 명소 한일극장을 기점으로 가장 번화한 대구 도심에 다다른다. 각종 시위가 줄 이었던 대구백화점 앞 광장은 소박한 무대가 대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약속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대구백화점, 제일서적, 중앙파출소에서 약속 한 번 안 해본 대구 사람이 있을까. 대백 정문에 서서 멀리 걸어오던 친구를 향해 손짓하던 그때가 아련하다.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변한 중앙로는 훨씬 걷기가 편해졌다. 예쁜 조형물도 눈에 띄고, 넓어진 보행로도 맘에 든다. 국내 최초의 시도라서 그런지 나름대로 신경 쓴 모습이 역력하다. 길을 건너면, 약전골목과 종로, 향촌동이 자리하고 있다. 불과 몇 미터인 중앙로를 중심으로 동과 서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마치 중앙로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첨단 유행 패턴을 느낄 수 있는 동성로와 역사와 사연을 그대로 간직한 남성로, 북성로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조선시대 한약재를 전문적으로 다룬 약령시가 열렸던 남성로 일대는 지금도 한약방과 한약상이 즐비하게 남아있다. 읍내 중심 도로였던 종로에는 염매시장, 진골목, 화교협회, 경상감영 등이 자리하고 있다. 동성로와는 사뭇 다른 기품과 고풍이 묻어난다. 향후 대구문학관이 들어설 구 상업은행 뒤쪽으로는 '예술인의 옛거리'라는 작은 입간판이 서 있다. 향촌동은 1950년대 다수의 문인'예술가들이 피란살이를 하면서 예술 활동을 하던 곳이다. 구상, 조지훈, 유치환, 박두진 등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문인들이 집결해 활동했고 이중섭, 김동진, 권태호 등의 유명 예술가들도 다수 생활했던 곳이다. 알면 보인다고 했던가. 유치환 등이 자주 찾던 호수다방, 화가 이중섭이 은박지에 못을 눌러 그림을 그리던 백록다방, 구상 시인이 자주 묵던 화월여관 등 주거 환경 정비가 절실하다고 느꼈던 오래된 건물들이 새삼 고혹적으로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던 차 안에서 생각이 많았다. 오늘 나에게 다가온 대구 시내는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구에 이런 애정이 있었나 싶다. 무엇이 나를 애향심 깊은 시민으로 만든 것일까.

지역 연구원이라는 공간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대구 도심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대구읍성, 향촌동의 역사, 종로의 의미를 알게 된 것도 그때부터이다. 그만큼 대구에 무심했나 싶어 내심 부끄러웠지만, 생각해 보면 아무도 그런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시내라고 부르는 명칭이 읍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선조 때 축성된 읍성이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고, 영조 때 다시 축조된 읍성은 1900년대 초에 철거되었다는 것, 동성로, 북성로, 서성로, 남성로는 이러한 옛 읍성의 경계라는 것, 향촌동이 피란문학의 산실이었다는 것 등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나는 그 역사를 알고 있었고, 의미를 이해했으며, 그러한 역사적 공간에 내 추억이 묻어있음을 오늘 기억해냈다. 그 순간 대구는 나 개인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친밀한 대상이라는 생각에 묘한 애착으로 연결되었다. 나 또한 역사 속의 인물이구나. 그래 바로 이 기분이다. 나를 애향심 그득한 시선으로 도심 곳곳을 돌아보게 만든 것은 역사에 대한 인식과 추억에 대한 기억의 시너지이다. 지역 정체성, 지역 사랑 말은 많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지역에 대한 이해이다.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곧 애정과 관심으로 연결될 가장 밑바닥의 자원이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대구 도심을 걸은 스스로를 기특하게 다독인다.

김성애(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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