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대구시의회. 교육청 시정질문에 나선 윤석준 대구시의원은 "수성구 고교의 경우 상위권 중학생들이 몰려 명문대 진학이 많은 것 뿐이지 각 학교가 학생을 얼마나 잘 가르치고, 열심히 하는지는 알기 어렵다"며 "각 학교가 학생들의 학력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를 분석해 정말 '잘 가르치는 학교'를 가려 달라"고 요구했다.
대구시교육청이 고교별 3년간 성적을 종단(縱斷) 분석하고 순위를 매기고 공개까지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학력 향상 정도를 학교 평가의 척도로 삼겠다는 것. 최종 대학입시 성적만이 아니라 투입·산출 성적을 대비했다는 점에서 더 '공정한 척도'라고도 볼 수 있다.
◆학력 향상 우수 20개교, 비결=이번 분석에서 가장 큰 향상도를 보인 대구 북구 매천고. 2008년 개교 당시엔 칠곡 주민들도 입학을 꺼리는 학교였다. 적잖은 신입생이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신입생도 적지 않았다. 입학 성적도 저조했다. 이 학교 고1 학생들이 처음 치른 2008년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의 등급 분포를 보면 7등급 이하 학생 비율이 19.7%로 3등급 이상 14.8%보다 높았다. 상황은 1년 6개월 만에 반전됐다. 이듬해 9월 시험에서 7등급 이하는 7.1%로 뚝 떨어진 반면 3등급 이상은 28.7%로 크게 상승했다.
매천고 박종태 교장은 "신설학교라 열의가 높았다. 우리 학생은 무조건 학교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학력 관리를 했다"고 말했다. 부진학생과 성적 우수 학생을 나눠 맞춤형 학력 신장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특별보충수업, 심화학습반, 학급 스터디 그룹을 운영했다. 성적이 저조한 수학, 영어 과목 경우 교사들이 지속적으로 과제물을 내주고 일일이 챙겼다. 박 교장은 "그랬더니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얻게 됐다"고 했다.
협성고는 3년 연속 학력 향상 우수교로 선정됐다. 교사들은 2006년부터 시작한 자체 혁신 연수에서 교과 지도 방법을 연구개발하고 공유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재단연합 심화반과 학교 심화반으로 나눠 관리했고,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위해선 개인별 진학자료를 만들었다. 이종현 교감은 "전 선생님들이 동참해 칭찬록 쓰기 등 인성교육에도 열성을 다했다"고 말했다.
대구외고는 성적이 떨어졌거나 하위권인 학생들을 따로 뽑아 주 2,3회 특별 보충 수업을 실시했다. 진로·학년 부장이 1학년 때부터 이들의 성적 추이를 관리했다. 교내 진로교육부를 만들어 맞춤식 진로지도를 했고, 지난해부터 전체 재학생을 상대로 논술특강을 실시했다. 대구외고 최성환 교장은 "영어 에세이 쓰기, 토론 대회, 수학 대회 등 교내 자체 경시대회를 열어 교과 공부에 도움을 줬다"고 했다.
◆입시명문 '수성학군'의 고민=수성학군 고교들은 그동안 학력 향상도 순위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수성학군의 우수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비 수성구의 하위권 학생들이 향상되는 정도가 큰 것은 당연하다는 이유였다.
압도적인 '대입 성적'도 자신감의 근거가 됐다. 2011학년도 대입 정시에서 4명 이상의 서울대 합격자(재수생 포함)를 낸 15개 고교 중 9개가 수성구 고교다. 한 교사는 "성적이 낮은 학생 경우 전문대 수시에 합격하면 아예 수능 자체를 안 보기 때문에 비 수성구 고교의 학업 성취도가 더 높을 수 있다. 반면 최상위권 학생이 수능에서 한 두 문제만 더 틀려도 그 학교 학력 향상도가 크게 내려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수성구 고교의 상위권 학생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중·하위권은 왜 학력 향상이 저조하냐는 것. 이는 과도한 사교육 열기와 중·하위권 학생을 위한 학업관리 부재가 원인이다.
"고1 수학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상태로 무작정 학원에서 고2 수학 선행반을 수강해요. 주변 친구들이 너나없이 선행(학습)을 하고 수성구 내신 시험이 어려우니까 불안감에 더 학원에 매달려요. 그런데 학원에선 문제 풀이 테크닉 위주로 가르치거든요. 들을 때는 안 것 같은데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예요. 선행 효과를 보는 건 소수의 상위권 학생들 뿐입니다."
선행·심화 학습이 일반화되다보니 중·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강의 자체를 학원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한 교육전문가는 "개념을 다지고 차근차근 진도를 나가는 학교 수업이 수능에는 더 맞다"고 했다.
학교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성구를 떠날 것을 고민 중이라는 한 고교생 학부모는 "학교도 학원처럼 모든 프로그램이 상위권에 맞춰져 있고 그 아래 아이들에게는 정말 소홀하다. 얘들은 학원에도 못가고 사설 공부방에서 혼자 보충을 해야 한다"고 씁쓸해했다. 또 다른 교사는 "수성구 고교의 학업 관리는 우수하지만 그 초점이 상위권에만 맞춰져 있다는 게 문제"라며 "서울대 진학 성적이 높은 학교에 들어가면 내 자녀의 성적도 향상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수성구 쏠림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교육 격차 해소, 팔 걷어부친다=이번 학력 향상 우수교 분석 결과는 학교간 경쟁 강화를 통한 교육 격차 해소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16일 계명대 행소박물관에서 열린 '달서구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 참가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수성구는 학급당 인원도 많고, 교실을 더 짓고 싶어도 땅이 없다. 물리적 환경은 비 수성구에 비해 더 열악하다"며 "그런데도 학생·학부모들이 수성구로 해마다 몰려드는데, 정말 수성구 고교가 잘 가르치고 있는지는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못하는 학생들을 얼마나 더 업그레이드시켰느냐가 학교 평가에서 더 중요하다. 대구 교육이 살기 위해선 수성구·비 수성구 고교 학력이 동반 상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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