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대통령의 下策(하책)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한반도의 분단이 결정됐다. 공산주의에 무지했고 동아시아에는 무식했던 루스벨트는 스탈린이 8월에 참전하면 한반도를 반으로 나누겠다는 밀약을 했다. 극동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처칠은 이 이상한 합의를 묵인했다. 그해 8월 10일, 일본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탄이 투하된 이튿날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란 걸 했다. 그 몇 시간 전 일본은 미국에 무조건 항복 의사를 타전해 왔다. 그러니까 스탈린은 항복한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었다. 그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남사할린과 쿠릴열도와 부속 섬, 그리고 한반도의 반을 얻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전적으로 미'소 두 나라의 야합이 빚은 비극인 것이다.

그 비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분단도 계속되고 강대국의 힘도 여전하다. 러시아 외무부는 16일 북한 대사를 불러 6자회담 재개를 논의했다. 중국은 천안함과 연평도의 피격은 눈감은 채 노골적으로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이 와중에 국정원장이 극비리에 미국에 건너가 CIA국장을 만났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소문은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한다. 그러나 미국이 남북정상회담을 원하고 있고 그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명분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크롤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한국 정부가 '북한이 6자회담으로 돌아와야 하고 비핵화 조치를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6자 중 우리만 빼고 모두가 회담을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그 중에서도 6자회담과 정상회담을 가장 원하는 쪽은 북한이다. 김정일은 애송이 티를 못 벗은 김정은에게 세습을 결정한 뒤 더 다급해지고 더 뻔뻔해졌다. 천안함과 연평도에 만행을 저지른 뒤에도 태연하게 손을 내밀었다. 적십자회담 군사회담 국회회담 등 온갖 회담을 제의하는 건 쌀과 돈을 달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게 통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 때 엄청난 돈과 물자 식량을 받아내고도 2006년 10월 핵실험을 했다. 그러고도 퍼주기는 계속됐고 핵을 무기화하는 북한의 일정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2009년 5월 2차 핵실험 뒤에는 핵무기를 터뜨린다는 협박이 훨씬 잦아졌다.

솔직히 말해 이명박 정부 역시 남북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정치판에는 연평도 포격이 없었다면 작년 말쯤 회담 발표가 있었을 것이란 예측이 있었다. 퇴물 정객이 메신저가 되어 뛰어다닌다는 소문도 있었고 정권의 실세가 동남아에서 정상회담 협상을 벌였다는 뉴스도 있었다. 연평도가 공격당했을 때 마치 곧 개전이라도 할 것처럼 온 정치판이 흥분했다. 모든 언론에서 김정일을 다시는 상종 못할 폭력배로 규정했다. 그때도 이 정치판을 아는 사람들은 몇 달 안 가 다시 남북대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릴 것이고 정상회담 카드도 다시 만지작거릴 걸 다 알고 있었다. 아마 김정일이 천안함과 연평도 만행에 대해 미안하다고 슬쩍 한마디만 흘렸어도 이미 정상회담은 열렸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대통령 인기를 올리는 일이요,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구미에 맞는 일이니 이른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나라의 내일을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하책(下策) 중의 하책이다. 김정일이 핵을 포기한다고 한 건 이미 몇 차례나 된다. 독재자의 약속을 믿고 발 뻗고 자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건 없다. 그런데도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다 속았다. 남북정상회담은 이 나라 국민들에게 대북 경계심을 풀도록 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거기다 물자와 다급한 식량까지 얻게 되니 무너지는 김정일 체제를 일으키는 데는 최고의 영약이다. 그리고 6자회담은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시간 끌기 회담이다. 역사를 보라. 공산주의자와의 타협이 무슨 결과를 가져왔는가. 6자회담이 성과를 내본들 돈은 역시 우리가 내고 생색은 강대국이 내며 시간이 지나면 다시 뒤통수를 얻어맞는 일이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북핵을 없애는 방법은 둘뿐이다. 하나는 북한을 포위 압박하여 무너지게 하는 것, 또 하나는 우리도 파키스탄처럼 자위권에 기해 핵무기를 가지는 것이다. 한마디를 더 보태겠다. 미국은 과거 소련의 핵미사일에 대비해 서독에 핵무기를 이양하고 사용 권한까지 넘겨주었다. 미국이 걱정한 건 소련의 핵무기가 아니라 독일의 독자적인 핵무장이었다. 우리가 핵무장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준 대가로 오늘 우리가 김정일에게 당하는 수모는 고사하고 열강에 농락당하는 일이 무릇 기하(幾何)인가?

전원책(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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