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립투사 박희광 의사' 연구로 학사학위 영남대 박정용 씨

일제 강점기 일본 경찰에 체포돼 20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의 아들이 선친의 항일투쟁 활약상을 연구한 논문으로 환갑이 지난 나이에 학사모를 쓴다.

주인공은 22일 영남대 2010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정치외교학과(주전공)와 지역 및 복지행정학과(복수전공) 학사학위를 동시에 받는 박정용(61) 씨.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 중퇴 후 뒤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2007년 영남대에 진학한 그는 젊음을 조국 독립에 바친 선친의 삶을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박희광 의사, 조선독립 대한통의부의 특공대원으로서의 투쟁활동'이라는 제목의 졸업논문을 썼다.

고(故) 박희광(1901~1970) 선생은 1901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16살 때 만주 서간도 지역 민족주의자들이 결성한 무장독립운동단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자진 입대했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반민족행위자들을 암살하고 군자금 조달에 앞장섰던 특공대원이었던 그는 1924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뤼순(旅順) 감옥에 투옥된 뒤 1심 사형선고, 2심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하다 1943년 석방됐다.

하지만 선생의 공로는 백범 김구 선생의 갑작스런 서거로 입증할 길이 막막해지면서 역사 속에 묻힐 처지였다. 그러나 당시의 재판기록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고,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현재의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선생은 감옥에서 익힌 재봉기술로 양복수선업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 1970년 향년 71세로 타계했다.

선생의 자녀(4남 1녀)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차남이었던 박 씨도 중학교 2학년 중퇴를 끝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곧바로 생업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박 씨는 18세에 칠곡군 공무원으로 특채됐고 그 후 27년 동안 칠곡군청과 구미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한 뒤 명예 퇴직했다. 이후 의료보험관리공단(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근무하면서 나머지 형제들이 모두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했지만 정작 본인은 공부할 수 있는 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학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고입·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하면서 2007년 만 56세의 나이에 영남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지어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부친의 유지를 잇기 위해 지역 및 복지행정학과를 복수전공했다.

현재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기념사업회' 사무처장과 광복회 이사로 활동 중인 그는 "졸업 후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기념사업회 내에 사회복지재단을 설립, 아버지의 뜻을 잇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고 박희광 선생 타계 후 구미 선산지역의 뜻 있는 인사들이 모여 동상 건립 등 기념사업 추진에 착수했으며, 그 결과 구미금오산도립공원 경내와 대구두류공원 인물동산에 선생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특히 금오산도립공원 경내에 있는 동상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지상'(愛國志士 朴喜光 先生之像)이라는 친필 휘호가 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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