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어머니

'뉘라서 가마귀를 검고/흉(凶)타 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긔 아니 아름다온가 사람이 져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 하노라.' -박효관(1781-1880)

어머니! 지난 설의 고향 길은 유난히 멀고 힘이 들었습니다. 두 시간 남짓한 길이었지만 결국 흐린 눈을 지우지 못해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벌써 쉰의 나이가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당신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어린아이에 불과한 이 못난 자식이 당신에게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30년 전, 당신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외지로 보내면서 많이 우셨지요. 그것은 아마도 아들의 대학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세월의 수상함에 대한 당신의 예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학기가 지나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야학의 교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 당신은 남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조심할 것을 당부하셨지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가난이 가르치는 것만으로 아니 중학 과정을 배우는 것만으로 구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 만 것이지요.

세상의 권력에 대한 분노가 커갈수록 당신의 병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못난 아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0.75평의 독방에 갇힌 아들 때문에 당신 역시도 한겨울 내내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지내셨지요. 그 소식에 어리석게도 아들은 더욱 치열하게 싸우는 것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노라 믿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당신을 외면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저 당신의 삶과 운명은 당신의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해서 당신이 면회실에서 반성문을 쓰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당신의 가슴에 못을 박으며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습니다. 20여 년을 홀로 키워온 아들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당신의 기억 속에는 당신의 품 안에 있던 어린 아들만이 남아 버렸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 부끄럽게도 세상을 구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 대한 타협과 변절로 당신 곁에 돌아왔지만 당신은 이미 치유될 수 없는 가슴의 병을 안고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지만 당신으로부터 시작하지 못한 뼈저린 반성과 후회를 하게 됩니다.

민중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이고 그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 제가 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헌신 역시 아무것도 없습니다. 먹이를 물어와 어미를 공양하는 미물보다 못한 서러움에 갑자기 목이 멥니다 어떻게 당신에게 또한 세상에 용서를 구해야 할지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어머니! 제발 오래오래 사십시오. 죄송합니다.

전태흥(미래 티엔씨 대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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