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가명·56) 씨의 삶은 리모컨에 묶여 있다. 그의 몸에서 유일하게 감각이 살아있는 것은 양손 가운데 손가락 뿐이다. 그는 손 끝에 미약하게 남아있는 감각으로 리모컨 버튼을 누른다. 전동 침대 높이를 조절하고, TV 채널을 돌리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박 씨는 온 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근육병을 앓고 있다. 그는 두발로 걸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 채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온 몸이 마비되다
1일 오후 자택에서 만난 박 씨의 몸은 앙상한 나무가지 같았다. 옷속에 감춰진 드러난 팔다리는 더 안쓰러워 보였다. 그의 몸에 연결돼 있는 지름 1㎝짜리 소변관이 현재 상태를 짐작케 했다. 박 씨는 "평생 살이 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릴 때 중심을 잡지 못해 자주 넘어졌고 근육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것이 병인지 알지 못했다. 근육이 굳는 병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병은 서서히 그를 짓눌렀다. 24살 때 찾은 병원에서 처음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근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불편한 몸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기는 힘들었다. 지난 2005년 중국인 부인을 만나 결혼했지만 6개월 만에 이혼하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박 씨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서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몸이 괜찮았다. 하지만 2008년 5월 당했던 교통사고는 그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박 씨가 오랜만에 외출을 한 어느 날이었다. 활동 보조 도우미와 함께 전동 휠체어를 타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덤프 트럭이 그를 덮쳤다. 트럭과 정면 충돌을 면해 목숨을 건졌지만 박 씨는 그 사고로 7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운전 기사의 명백한 과실로 인한 사고였지만 박 씨는 기사를 용서했다. "트럭 기사는 부모님과 어린 자식 2명을 데리고 사는 30대 가장이었어요. 가장이 무너지면 한 가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형사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경찰측에 말했고 합의금도 받지 않았어요."
7개월간 병원 입원비와 치료비를 받은 것이 보상의 전부였다. 박 씨는 세상에 따뜻함을 베풀었지만 그 배려는 오히려 큰 짐이 돼 돌아왔다. 사고 이후 부분 기억 상실증으로 과거의 기억 일부를 잃어 버렸고, 온몸에 감각이 사라졌다. 사고 이후 간병인 고용을 위해 이곳 저곳에서 돈을 빌렸고 2천만원이 넘는 빚까지 얻어 박 씨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인생의 첫 꿈
사고 이후 박 씨는 모든 것을 남에게 의지해야만 했다. 장애인 활동 보조인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삶은 의존적으로 바뀌었다. 석 달 전부터 박 씨를 돌보고 있는 최정임(48·여) 씨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의 곁을 지킨다. 최 씨의 도움이 없다면 밥을 먹을 수도, 대소변을 볼 수도 없다.
그의 왼손에는 전동 침대 높이를 조절하는 리모컨이 놓여 있다. 최 씨는 "아저씨는 혼자서 리모컨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가운데 손가락을 움직여 버튼을 누를 수 있게 항상 리모콘을 왼손에 놓아 둔다"고 말했다.
활동 보조인이 퇴근하면 박 씨는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전동 침대를 잘못 조작해 머리가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질식할 뻔한 위험도 여러 차례 겼었다. 혹시라도 리모컨이 손에서 떨어지면 꼼짝없이 같은 자세로 16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맘 놓고 편히 잠을 잘 수도 없다.
박 씨는 한 때 자신의 삶을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남동생 박명지(가명·52) 씨 마저도 근육병으로 몸이 굳어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세상이 죽도록 미워했다. 항상 타인에게 도움을 구걸해야만 하는 자신의 삶이 싫었고 또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최근 대구 근육장애인협회에 방문하면서 조금씩 희망을 되찾았다.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아픔을 공유할 수 있었고 근육병을 앓으면서 30년의 세월을 버텨온 그를 보고 위로를 얻는 이들도 있었다. "근육병을 인정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세상을 좀 더 산 사람으로서 근육병 환자들을 전화로 상담해주며 고민을 들어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박 씨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꿈을 꾸고 있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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