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큰장네거리. 달성공원로 방향으로 신호등에 직진 신호가 들어오자 20여 명의 행인들이 일제히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꽉 막혀 있는 차량 사이를 이리저리 비집으며 도로를 가로질렀다. 이곳은 도로변에 서있는 '보행금지' 표지판이 무색할 정도로 무단횡단이 일상화돼 있다.
주변 대신지하상가 계단을 통해 길을 건널 수 있지만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한 리프트나 엘리베이터가 없어 무단횡단이 잦다.
서문시장 큰장네거리에 횡단보도를 그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서문시장을 자주 찾는 채미순(56·대구 달서구 신당동) 씨는 "무릎이 좋지 않아 지하도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 무단횡단을 한다"며 "도로에도 늘 차량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어 사고 위험이 크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횡단보도가 생기면 지하도로 지나다니는 유동인구가 줄어들어 상가 매출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하상가 상인들의 반대 때문에 미온적이다.
한일극장 앞 지하상가인 대현프리몰에서 20년째 모자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윤순옥(55·여) 씨는 "횡단보도가 생기면 매출 감소가 뻔하다. 이곳 상인들에겐 횡단보도가 생존권을 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횡단보도가 지하상가의 매출 감소를 가져온다는데 의견이 엇갈린다. 2009년 지하상가 상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횡단보도를 설치한 중앙로네거리 경우 지하상가 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인들이 지하상가 출입구를 리모델링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면서 주변 환경을 개선한 덕분이다.
중앙로네거리 지하상가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이모(63·여) 씨는 "행인은 줄었지만 주변 환경이 깨끗해지면서 매출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대구시가 횡단보도 설치에 따른 인근 상가의 정확한 매출 분석이나 주변 환경개선 등에 대한 고민없이 무조건 '안 된다'는 얘기만 앵무새처럼 내뱉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대구장애인연맹 서준호 사무국장은 "장애인 보행권 확보와 사고 위험 때문에 2006년부터 큰장네거리 횡단보도 설치를 요구했지만 대구시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며 "대구시의 무소신·무능력 행정때문에 시민보행권이 희생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매주 지하상가를 찾아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상인들의 반대가 워낙 완강해 협조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크다"고 해명했다.
시는 이달 중으로 '보행자환경개선위원회'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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