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인사] 탄광촌 화폭 옮기기 10년…이태랑 화가 이달말 초대전

헝클어진 머리, 덥수룩한 수염, 어눌한 말투. 화가 이태량(47)과 만나 얘기하다보니 3시간을 훌쩍 넘겼다. '긴장을 늦췄다가는 큰 코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면서, 또 잠이 깨면서도, 밥을 먹을 때도, 친구들과 만나 소주 한 잔을 기울이거나, 길을 오갈 때도…. 그러니까 한시도 어떤 그림을 그릴까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오직 그림 그리는 길을 걸어왔고 그 길 외에는 생각지도 않고 그 길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3월 말로 예정된 초대전을 준비 중인 그는 요즘 붓을 내려놨다. 추상을 버리고 구상을 준비 중인데 속된 말로 '영 내 스타일이 아니다'는 것이다. 뜻맞는 화가들이 모여 강원도 철암 탄광촌을 화폭에 옮긴 것이 10년. 그 작품으로 초대전을 기획했는데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인 것 같다"는 것이 붓을 놓은 이유다.

"예술가의 작업은 항상 변화하죠. 그린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그릴 것이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는 '화가가 되어야지'라는 결심을 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가족들이 '붓쟁이'라며 미대 진학을 반대했지만 상경, 6개월 공부해서 미대에 입학했다. 그에게 그림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전부였다. 그에게 그림은 무엇일까. "작가는 그림에 자신의 주장을 그리고는 칭찬받겠다는 욕심을 부리죠. 그러나 그림은 주장과 요구만 있는 게 아니라 같이 고민하고 공유하는 어떤 계기를 마련하는 과정이자 산물입니다."

새로 짓는 건물에 채워지는 예술작품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았다. 그는 "빌딩에 예술을 입혀보자는 취지에서 1%의빌딩에 건축법을 적용하고 있는데 수적으로는 작품이 많아졌지만 내용적으로는 부족합니다"며 "내 작품은 아니지만 창피하다고 느낄 정도의 작품도 있습니다"고 지적했다.

올해 3번의 초대전과 개인전을 맞는 이태량은 1995년 첫 개인전 이후 총 11번의 개인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그룹전을 거쳤다. 월간 '미술과 비평' 기획국장과 KIPAF(대한민국 국제퍼포먼스 아트페스티벌) 대표다.

'생활 속 예술' 얘기도 자연스럽게 화제로 올랐다. 철암 탄광촌을 처음 찾았을 때 그곳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지 않았다고 했다. '개도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흥청망청했던 탄광촌이었다. 그들은 잊을만하면 찾아와서 가슴 아픈 탄광촌의 추억을 되살려내려는 화가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탄광촌 사람들이 자신들과 문화에 관한 문제를 상의하고 있단다. "미술이 품고있는 사회적 관심이 그들의 생활에 일조한 것입니다."

그의 작품 주제는 첫 개인전부터 '존재와 사고'였다. 그는 "그냥 멋스러워서 지은 것이 존재와 사고(existence and thought)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올무가 돼 버렸다"며 "하지만 항상 있는 것과 없는 것, 무규정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철학도, 문학도 공부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 김천 출신인 이태량은 김천고, 경기대 미대를 나왔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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