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에게 절실한 화두는 '몸'이다. 인간의 몸뚱이, 내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줄곧 끌고 다니는 바로 이 '몸' 말이다. 막살아온 내 몸이 언제부터인가 날씨와 교감하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뀔 때는 창자가 가렵고, 바람이 불면 심장이 슬프다. 특히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시는 날은 어깨 근처에서 적중률 좋은 일기예보도 전해준다. 대학 학부 때는 전공이 전공인지라 몇 년간 몸 만들기에만 내내 힘썼다.(헬스 말고 인체 조각) 강단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와 근육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내는 해부학도 몇 년간 강의했다. 그런데도 여기 있는 뻔한 이 몸뚱이를 알아가는 일이 내겐 너무도 방대하고 힘든 작업이다.
데카르트 선생께서는 겁도 없이 육체와 정신을 분리시켜 버리셨고, 이성은 고상하게 대접하고 육체는 천대하는 편애의 날들이 이어졌다. 미술이 너덜너덜 버려진 몸을 찾아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복원해 가는가 싶었는데, 근자에는 후기구조주의니, 포스트모던이니 하면서 몸을 다시 해체시키고, 마침내는 사라지게 한다.
늘 컴퓨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스마트폰에 접속해 부유하는 텅 빈 디지털 보디들을 우리는 길가에서, 버스에서, 심지어 마주앉은 찻집에서 쉽게 발견하곤 한다. 실리콘을 삽입한 저 여인, 그 부드러운 살결을 벗겨 내면 사이보그의 차가운 금속성으로 도발해 올 것만 같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인체의 비례를 모방했지만, 요즘은 메스로 인간의 살을 직접 재단해 낸다. 성형은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 퍼포먼스다. 극단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 이 시대의 진정한 조각가는 성형외과의다.(나도 전공은 같은데, 단지 좀 가난하다는 차이가 있다) 그분들이 작업해 놓은 그녀의 아름다운 몸은 그야말로 '와우 예술이다'. 간고등어와 쭉빵 걸들이 눈과 귀와 사지를 욕망의 테크놀로지에 내준 채 눈부시게 해체되어가는 아름다운(?) 은빛 꿈을 나는 자주 꾼다. 이제 더불어 다른 꿈도 꾸고 싶다. '인간의 감성과 테크놀로지, 정신과 육체, 가상과 실재, 디지털과 에콜로지(ecology), 에고(ego)와 자연, 분리할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이 우리 몸에서 겹쳐지고 통합되면서 가벼운 나비의 날갯짓으로 날아오를 수 있기를.'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디지털 보디, 사이버 의식으로 차디찬 도시의 언저리에서 내 몸은 겨울을 난다. 몹시 춥다.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어서 청도 작업실에 봄이 찾아와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열어젖힌 채 세상과 교접하는 메를로 퐁티의 '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부푼 대지를 디딘 내 발바닥의 가려움으로, 나비처럼 아지랑이 속을 날아올라 온몸으로 살아 있기를.
리우/미디어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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