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모두가 잠든 새벽… 범어네거리∼반월당 거리 풍경

범어네거리 도시철도역 출구 인근에서 환경미화원이 새벽 청소를 하고 있다.
범어네거리 도시철도역 출구 인근에서 환경미화원이 새벽 청소를 하고 있다.
오전 4시30분, 주문받은 떡을 만들고 있는 염매시장 떡집 풍경.
오전 4시30분, 주문받은 떡을 만들고 있는 염매시장 떡집 풍경.
대구은행 본점 인근의 오수로 공사 현장. 현장 인부들은 차량통행이 적은 새벽에 일을 하고 있다.
대구은행 본점 인근의 오수로 공사 현장. 현장 인부들은 차량통행이 적은 새벽에 일을 하고 있다.

오는 8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릴 대구의 새벽풍경은 어떨까? 지난달 17일, 24일 이틀에 걸쳐 범어네거리부터 반월당일대까지 새벽 거리를 거닐었다. 새벽 풍경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삶이 묻어나 있었다. 하지만 기자가 기대했던 화려하거나 활기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스산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젊음의 거리인 동성로마저 새벽에 불을 밝히고 있는 곳은 PC방 몇 군데밖에 없었다. 도시철도(지하철) 1·2호선이 교차하는 반월당역 메트로센터 분수대 일대는 노숙자 쉼터나 다름없었다.

◆범어네거리, 새벽 근로자만

'대구의 맨해튼'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밀집한 범어네거리. 그렇지만 새벽시간의 범어네거리는 '맨해튼'이란 수식이 가당치 않았다.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 줄 건물 조명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도시철도 범어역 3번 출구에서 환경미화원 박경진(54) 씨가 기자를 반겨줬다. 귀에는 라디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새벽 풍경에 대해 묻자, "오전 2~5시에는 조용합니다. 가끔 취객들이 쓰레기통을 발로 차서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러려니 합니다. 5시 이후에 첫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역으로 들어갑니다."그리고 묵묵히 거리를 쓸었다.

이곳엔 새벽 인력시장이 서는 곳인데, 요즘은 건설경기 침체로 이마저 뜸하다. 일거리를 찾아나선 8, 9명이 하염없이 자신을 태워갈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잠시 뒤 새벽 청소차는 일대 상점 앞에 나와 있는 쓰레기를 하나 둘 거둬갔다.

◆새벽공사 한창인 대구은행 본점 앞

달구벌대로 대구은행 본점 앞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구의 스포츠 대축제를 앞두고 20여 명이 마라톤코스 오수로 공사에 여념이 없었다. 여름에 하수도를 통해 악취가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오수만 따로 흘러가도록 관을 분리해 매설하는 중이었다. 이들은 차량 통행이 뜸한 오전 6시 전에 그날 공사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모두 잠든 새벽에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공사에 대한 불만이 많다. 일부 주민들이 공사 소음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는 바람에 현장 인부들은 소음을 줄여가면서 작업을 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공사 진행 속도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

이 공사현장의 배성진(47) 소장은 "3월 안에 공사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매일 새벽 열심히 공사를 하고 있다. 주민들이 조금만 이해를 해 줬으면 좋겠다"며 "전 세계인이 볼 마라톤 코스인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대구은행 본점 앞에는 연말연시를 맞아 설치한 화려한 조명들이 새벽 일을 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고 있었다.

◆노숙자들이 차지한 반월당 메트로센터

생각지도 못했다. 도심 지하상가가 새벽에는 노숙자 쉼터로 변신할 줄이야. 대구역이나 동대구역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이곳에도 그대로 연출됐다. 벤치와 탁자, 빈 공간 어디에나 사람들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오전 4시, 교복을 입은 여고생 2명과 마주쳤다. '집에 안 들어가요?'라고 묻자, 쑥스러운 듯 "친구들과 놀다가 시간이 너무 늦었다. 첫 전동차를 타고 집에 갈 생각이다. 여기 앉아 있으면 춥지도 않고 좋다"고 답했다.

어림짐작으로 세어봐도 메트로센터에만 30~40명이 새벽을 보내고 있었다. 메트로센터 관계자는 "지하상가가 횡단보도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막아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새벽에 추위를 피해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내쫓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새벽에 불 밝힌 염매시장 떡집

오전 1, 2시가 넘어가면 동성로도 잠을 잔다. 청소차가 도심의 쓰레기들을 주워담고, 몇몇 술집에는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취객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내 인적이 드문 거리로 변한다. 오전 3, 4시쯤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은 청소년들의 영원한 쉼터, 24시간 PC방이 도심 곳곳에서 불을 밝혀주고 있었다. 대구 최대 번화가의 새벽 치고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염매시장 인근 떡집들은 오전 4시 30분이 지나면 불을 밝힌다. 특히 주말에는 더 빨리 문을 연다고 한다. 동아쇼핑 앞에서 오전 6, 7시에 출발하는 관광객들에게 주문한 떡을 건네줘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에 이어 30년째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떡집 김병준(31) 씨는 "등산객이나 관광객들이 주문한 떡을 만들려면 오전 2, 3시쯤 나와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특히, 명절이나 연휴 때는 더 바빠진다"고 말했다.

오전 5시 가게 문을 연 현대식육식당 조일현(58) 씨는 "20년 넘게 삶은 돼지고기를 팔고 있다. 특히 아침 일찍 멀리 떠나는 여행객들의 맛과 영양을 생각해 새벽부터 나와 일하고 있다"고 했다.

각종 국제행사가 잇따라 열릴 대구.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새벽 풍경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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