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에게 학교란? 활력소!…대안학교 영천 '산자연학교'

획일적인 공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자유로운 교육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대안학교인
획일적인 공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자유로운 교육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대안학교인 '산자연학교' 또한 그 같은 생각으로 만들어진 곳. 이 학교 아이들은 수시로 산과 들을 누비는 등 자연과 호흡하며 생명과 사랑을 배워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초등학생이 '스트레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세상이다. 일찍부터 경쟁에 내몰려 학교를 마친 뒤에도 학원 순례를 한참이나 반복한 후에야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이 많은 까닭이다. 이를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고민도 깊다. 주말까지 이어지는 빠듯한 학원 스케줄에 허덕이는 아이를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지만 주변을 돌아보며 다시 채찍을 든다. 행여 '내 아이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다들 열심히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시킬 수 없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팍팍한 생활,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교육을 꿈꾸는 이들은 대안학교를 찾는다. 하지만 대안학교로 가는 길은 아이와 학부모 모두에게 아직은 낯선 여정. 제도권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겠다는 용기를 냈으나 첫 발걸음을 떼기엔 두려움이 앞선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지부터 학교 운영, 교육 과정 등 모든 것이 생소하다. 경북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에 자리한 '산자연학교'(교장 정홍규 신부)를 통해 대안학교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산과 들이 우리들의 학교

"교장 선생님, 축구 같이 하실래요?"

2일 찾은 산자연학교. 아담한 단층 교사 앞 운동장에는 아이들 대여섯 명이 공을 갖고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 꽃샘추위로 공기가 차가웠지만 아이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옷에는 흙이 잔뜩 묻었다. 교장인 정홍규(57) 신부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다 한 아이에게 한마디 건넸다. "이 녀석아, 옷 다 버렸네. 빨아야겠다." 정 신부나 꼬마 모두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산자연학교는 1992년 폐교한 오산국민학교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정 신부가 방학과 주말을 이용해 생태와 평화를 가르치는 캠프 형태로 오산자연학교를 운영하다 2007년 대안학교인 산자연학교를 설립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학생이 채 10명도 안 됐지만 현재 재학생은 60명으로 늘어났다. 초'중등과정을 가르치는데 이곳에선 중등과정도 7~9학년으로 부르고 있다.

이날 오후도 여느 때처럼 학생들은 교실을 들락거리며 장난 치랴, 벗어둔 신발과 책상을 정리하랴 부산을 떨고 있었다. 그 중에 유독 문이 닫힌 채 조용한 교실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복합문화공간인 물레책방의 변홍철 인문학연구실장이 강의하는 '영화와 인문학 수업'시간이었다. 그는 2년째 1주일에 한 번꼴로 이곳에 찾아와 특강을 하고 있다.

초등과정 고학년들과 중등과정 아이들 30명이 모여 앉아 TV 모니터에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자세가 가지각색이다. 책상에 얌전히 앉은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교실 가운데 바닥에 쪼그리고 앉거나 교실 뒤편에 의자만 빼 자리를 잡은 아이들까지 저마다 편한 자세로 수업에 참여했다.

상영 중인 영화는 김명준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로 '혹가이도조선초중급고급학교'에 재학 중인 재일 조선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 학교'. TV를 함께 보면서 변 실장은 이따금 아이들에게 보충 설명을 했고 예닐곱 가지 질문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고 간단한 소감문을 작성하게 했다. 한참 끄적대는 한 아이 뒤에서 슬쩍 엿보니 '나에게 학교란?'이라는 질문에 '활력소'라고 쓴 답이 눈에 들어왔다.

변 실장은 이곳 아이들에게서 생동감을 느낀다고 했다. "얼핏 보면 무질서해 보일지 모르지만 스스로 만든 질서를 지키는 아이들이에요. 다들 눈빛이 살아 있는 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길들여진 입시기계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하나씩 해나가는 게 보입니다. 저도 가르칠 재미가 나죠."

시골의 맑은 공기만큼이나 아이들의 얼굴도 해맑다. 현재 가장 상급 학년에 재학 중인 김정은'김하원(9학년) 양. 둘은 모두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진학이 예정된 인근 중학교를 마다하고 이곳 문을 두드리게 됐다.

밴드부에서 각각 리드 싱어와 기타를 맡고 있는 정은이와 하원이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이 학교의 장점이라고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아이들이 마구 말을 걸어와 놀라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덕분에 금세 친해질 수 있었죠."

둘은 어느새 스스로 하는 공부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 비인가 학교이다 보니 학력을 인정받으려면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데 정은이는 이미 지난해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하원이는 8월쯤 미국에 10개월간 어학연수를 다녀올 예정이다.

"이곳 분위기가 좀 자유롭죠? 그래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놀 때와 공부할 때를 스스로 구별하게 돼요.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걸 찾으면 열심히 노력하기 마련이잖아요."

◆아이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봅니다

산자연학교가 대안학교이긴 하지만 일반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일반 교과과정은 교양교과라는 이름으로 모두 소화하고 있다. 생태농사, 다도, 도예 등 대안 과와 지역사회 탐방, 동아리 등 합동 교과과정도 따로 두고 있다. 하지만 학력과 진학 등 문제를 생각할 때 공교육 과정에서 한 발 비껴나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안학교에 대해 학부모와 교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산자연학교에 아이를 보낸 학부모들은 "아이의 능력을 믿어준다면 불안감을 덜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태헌(43'대구시 수성구) 씨의 딸 도희는 2년 전 이곳에 입학, 올해 6학년이 됐다. 아이를 자연과 호흡하게 해주고 싶어 오산자연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생태 캠프에 참여했다. 그러다 대안학교로 전환했다는 소식을 듣고 딸을 입학시켰다. 물론 입학을 결정하기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주말까지 학원에 시간을 몽땅 바쳐야 하는 현실을 내 아이가 겪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도희가 공부를 잘하기보다 웃으며 생활하길 바랐는데 뜻대로 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이정혜(46'여) 씨는 아예 학교 바로 옆으로 이사까지 왔다. 서울에서 의사로 일하던 남편이 팍팍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데다,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딸 세희가 지난해 9월 입학한 데 이어 남편이 인근 병원에 새로 일자리를 얻었고 12월엔 새로 지은 집에 입주했다.

"살아가면서 공부와 일에 쫓겨 행복함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는 남편의 말에 공감이 가더군요. 조금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결심을 했어요. 아이가 선생님과 허물없이 지내고 틈만 나면 산과 들로 쏘다니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만족스러워요."

음악을 가르치는 채정미 교사는 3년째 이곳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채 교사는 아이들이 학교 생활이 즐겁다고 할 때 보람을 맛본다고 전했다. "방학이 되면 집에 가서도 곧잘 전화를 해 심심하다고 난리예요. 아이들뿐 아니라 저 역시 밝고 솔직한 아이들과 살을 맞대는 것이 즐겁습니다. 입소문을 타서인지 최근에는 입학 대기자가 생길 정도죠."

교장 정홍규 신부는 "이곳은 일반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도 소화하지만 예술과 생명, 생태, 자연 등 과학을 중요시한다"며 "자연 속에서 숨쉬며 공감과 배려 정신을 익혀가는 아이들을 볼 때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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