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정웅. 그가 '붓'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귀신같은 실력으로 도자기, 꽃 등의 한국적 소재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인기를 끌던 작가는 2003년 '붓'을 만난 순간 한국의 '정신'과 만났다.
"몇 년 전 중국 상하이 아트페어에서 제 그림을 보던 두 명의 중국인이 말다툼을 벌이는 겁니다. '그림이다', '사진이다'는 논쟁을 벌이던 두 사람은 다음날 돋보기를 들고 전시장을 다시 찾았어요."
그의 붓은 이처럼 현실적이다. 그는 붓의 표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획을 긋고 있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붓, 먹물을 토해내고 지쳐있는 붓, 망중한을 즐기다 들킨 것 같은 표정의 붓….
하지만 단순히 붓의 묘사만으로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다. 먹을 뿌리고 번지게 하는 그의 행위가 더해지면서 동서양의 작법을 교묘하게 결합시킨다.
'내 그림에는 극사실과 추상, 행위가 공존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그림은 울림을 준다. 초기에는 붓을 묘사하는데 그쳤다면, 이제는 붓에 먹을 찍어 추상적인 점과 선, 면을 완성한다. 커다란 붓으로 한지 위에 긋는 그의 내공이 깊다. 먹은 동양적 사유의 깊이를 드러내며 그의 붓 그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한지에 붓과 먹으로 수묵의 표현을 해 추상적인 형상을 완성합니다. 이것은 저의 의도대로 되지 않죠. 무수한 한지를 버린 끝에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건질 수 있어요. 그 바탕 위에 유화물감으로 붓을 그립니다."
한때 작가에겐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부 활동으로 기초를 다져 그림 하나는 자신 있었지만 당시 대학 입시에서 '적녹 색약'판정을 받으면서 미술대학 입시에서 자격조차 주어지지 못한 것.
그래서 그는 오기로 그림 실력으로 정면 승부했다. 그는 도자기, 꽃 등 한국적 소재의 정물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 '형상'이라는 껍데기를 깨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추상으로 나아가기 힘든 것은 역시 학벌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고 추상을 하면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그 때 만난 것이 '붓'입니다. 극사실을 보여주면서 추상적인 요인을 도입했죠."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미국의 한 유명 호텔은 개관과 동시에 로비에 장식할 그림으로 그의 작품을 선택, 대작 12점을 한꺼번에 구입하기도 했다. 중국 미술시장에는 그의 짝퉁 그림이 돌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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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것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세계 미술시장이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서 그들의 것과는 다른, 동양적인 이미지를 찾고 있어요. 그들과 비슷한 것을 해서는 승부를 내기가 힘들죠. 지금까지 서양을 무작정 따라갔다면 이젠 '우리다운' 것을 찾아야 해요."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그의 작품을 두고 "형식적으로 정물화에 근접하지만 그 전체적인 인상은 문인화적 정서가 강하다"고 표현했다.
그에게 작가로서 큰 명성을 준 '붓'이지만 언젠가는 깨어야 할 '틀'이다. 작가에겐 참 어려운 숙제다. 한 발 나아가기가 조심스럽다. 실패한다고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작업을 위해 연구하고 실험해요. 새로운 기법과 소재를 찾고 있죠."
대구에서 6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전시는 맥향화랑(053-421-2005)과 수성아트피아(053-668-1800)에서 27일까지 열린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동영상 시민기자 윤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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