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도시 대구, 이것부터 바꾸자] 오페라축제 하면서 전속 오케스트라 하나 없다니…

1)남세진 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남세진 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은 대구가 성숙한 문화예술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주목하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남세진 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은 대구가 성숙한 문화예술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주목하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산업 등 분야를 막론하고 문화를 배제하고는 성공적인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비단 전시와 공연, 문학 등 전문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 전반이 문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대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문화도시 대구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문화예술계를 비롯, 각계 전문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다-편집자 주

1)남세진 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남세진 대구교육대학교 음악과 명예교수(1996∼1998년 대구문예회관 관장 재직)는 "대구는 문화예술도시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푸대접과 작은 것에 매여 큰 것을 잃어버리는 우(愚)에 빠져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 변화 촉구

남 교수는 "공연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는 대구가 명색이 국제오페라축제를 열면서도 전속 오케스트라도 없고, 합창단도 없고, 오페라 단원도, 전속 스태프도 없다. 이렇게 해놓고 무슨 세계적인 축제를 열고, 공연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또 뮤지컬페스티벌에 대한 국비지원이 깎였다고 대구도 그에 맞게 예산을 깎아버리면 어떻게 행사를 치를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대구시의 예산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며 대구시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대구문예회관 관장 채용과 관련 그는 "문예회관장이 꼭 지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능력 있고, 열정적인 사람이면 누구라도 괜찮다"고 밝히고 "문예회관장을 비롯해 향후 설립하게 될 오페라재단 대표에도 CEO형의 관리자가 아니라 전문 문화예술인을 영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예회관과 오페라 재단 모두 '돈벌이보다는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에 무게가 있는 곳인 만큼 문화예술전문가가 적임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예술을 무작정 청중의 눈높이에 맞추려 하거나, 돈벌이로 생각한다면 대중이 오히려 예술로부터 멀어질 것"이라며 "문예회관장이든 오페라 재단 대표든 돈벌이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품격 있는 문화예술을 제공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또 "오페라하우스 주차장 확보 문제를 비롯해 대구 원도심 옛 건물과 거리 보존 문제 등 굵직굵직한 문화예술 현안에 대해 대구시장이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적 이유를 내세워 미래의 '비전'을 등한히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도시 전체가 문화적으로 변해야

"영국 런던의 프롬스(Proms) 축제는 두 달 동안 열려요. 이 축제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런던을 찾는데, 오직 음악 공연만 보러 거기까지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기간 동안 전시회와 문학 강연회 등 다양한 볼거리가 함께 열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지요. 아무리 한가하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축제 하나를 구경하기 위해 어떤 도시를 방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대구가 뮤지컬 페스티벌이나 오페라 축제만으로 관광객을 유치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축제 기간에 다양한 볼거리가 함께 열릴 때 비로소 관광객이 찾고, 관람객도 자연스럽게 증가한다는 말이었다.

남 교수는 "지역에는 매년 음악전공자가 1천 명 정도 배출된다. 이들 중에는 해외 유학파도 상당수이고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실력파도 많다. 그러나 이들이 설 자리가 없다. 수많은 음악 인재들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는 관객이 늘어나야 하고, 관객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좋은 공연이 자주 열려 저변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는 전문 분야 사람들끼리 향유하거나 퍼뜨리는 것이 아니지요. 저변 확대 없이 문화예술이 꽃필 수는 없습니다. 음악인을 비롯한 문화계 종사자 스스로가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대구시 역시 시민들이 문화예술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해야 합니다."

남 교수는 "대구의 성악가들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공연문화를 뒷받침해 줄 대구시의 예산은 너무 적다"며 "문화예술이 다른 분야와 엇비슷하게 보조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라도 대구시가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칭찬하는 분위기 만들자

음악을 전공한 남 교수는 "현제명과 박태준은 한국 최고의 음악인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해 빛이 바랜 면이 있다"면서 "흔히 현제명 선생의 친일행적을 문제 삼는데, 당시 상황과 분위기를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 한쪽으로 몰아세우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친일행적은 친일 행적으로 평가하고, 음악적 업적은 또 그것대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친일 행적 때문에 소중한 국가적 자산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은 나치당원으로 활동했지만 면책받았고,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 위대한 음악적 업적을 이루었다"며 "우리가 우리를 홀대하는데, 어떻게 한국 최고, 세계 최고가 될 수 있겠느냐. 현제명 선생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계 전체가 상대의 잘못보다는 잘하는 점에 주목할 줄 알아야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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