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가만있어도/ 향기가 건너온다/ 사람은/ 인품이 향기다/ 배려하고/ 낮출 줄 알면/ 그게 향기다/ 선한 마음으로/ 문을 열면/ 마음의 향기가/ 빛이 난다/ 오늘은 유난히/ 세상이 밝아보인다.'-'향기 나는 몸'
"일흔을 넘긴 나이에 시집을 낸 것이 무슨 자랑입니까.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참으로 행복합니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길자(72) 할머니가 지난 2년간의 습작 활동을 끝내고 최근 '홍매화 입술'이란 시집을 냈다. 1969년 김천으로 시집온 이후 김천역 앞에서 가게를 하며 줄곧 가정과 가게만을 지켜온 평범한 주부였다.
할머니의 첫 작품인 '홍매화 입술'에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등 계절과 자연, 손자'자식 사랑 등 70여 편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나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2년 전 70을 넘긴 나이에 시 창작의 문을 두드렸다"면서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을 시와 연관해 자다가도 좋은 시상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서 적어 놓는다"고 말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보냈을 것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시에 대해서는 영락없는 '문학소녀'의 모습이다.
그는 "쉰을 지나 일상을 일기로 쓰는 습관이 시집을 내는 계기가 됐다"며 "김천문화원에 개설된 '시 창작반'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마치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여름에 지도 시인 권숙월 선생님께서 시집 출간을 권해 욕심을 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입니다."
뒤늦게 시작한 문학의 꿈을 실현해가는 할머니는 이제 또 다른 삶을 찾아가고 있었다. 시 창작에 이어 문인화 공부에 나선 것이다. 할머니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 사군자를 끝내고 요즘은 모란(목단) 그리기에 흠뻑 빠져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항상 가슴에서 무언가 뭉클거린다"면서 "몸은 70대 할머니인데 마음은 아직 30, 40대 새댁인 것 같다. 비록 이 몸은 좁은 가게에 갇혀 있지만 마음은 시를 통해 자유로울 수 있다"고 했다.
할머니의 일터인 슈퍼마켓도 김천역 명물로 통하고 있다. 1969년 시집온 후 남편과 함께 역 광장 한쪽에 있는 가게를 지켜오고 있으며 김천시민들과 애환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몰래 빵을 훔쳐 먹은 사람이 마흔이 넘어서 가게를 찾아와 빵값 2천원을 주고 가기도 했으며 서울 기차요금이 없어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돈을 빌려 간 얘기 등 많은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다. 할머니는 문학에 이어 요즘에는 외국어 공부에도 재미를 들였다. 가게를 찾는 외국인들과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독학으로 일본어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라며 일본어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팔다리가 건강할 때 열심히 생각하고 살아야 하며 앞으로 더 많은 열정을 기울여 제2집'3집의 시집을 출간하고 싶습니다."
할머니는 세상일을 나이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에게 "나이를 탓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김천'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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