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노숙자 이야기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노숙자란 남들이 도와줘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남들이 식량이나 잠자리를 제공하지 않으면 헐벗고 굶주리게 되며, 심지어는 목숨조차 위태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한테서 일반 시민들이 거꾸로 도움을 받거나 나아가 행복감을 느끼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아니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란 이론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가보다. 며칠 전 한 신문 기사에 실린 두 사람의 미국 노숙자 이야기를 읽고 세상에 정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은 누구 말처럼 착하게 타고나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미시간주 폰티악시의 마이클 시카워(44)라는 사람은 여느 날처럼 시내 한 길모퉁이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차 한 대가 서더니 한 여자가 내려 동전 한 무더기를 그에게 주고 갔다. 그날 밤 시카워 씨는 노숙자 쉼터에 돌아가 동전을 정리하던 중 그 속에서 몇 백 달러 가격으로 추산되는 반지 하나를 발견했다. 아마도 마음씨 고운 그 여자가 동전을 쏟아 붓다가 자기 반지까지 벗겨져 떨어졌음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전당포에 맡기고 돈 좀 벌어볼까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버렸다. 사람들이 노숙자들이란 기회만 닿으면 도둑질하려는 무리로 보는 것에 비참함을 느껴왔기 때문이었다. 이후 시카워씨는 여자를 만났던 자리에 매일 출근하고 있다. 고마웠던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아직도 그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또 그녀가 몰던 차종도 알고 있어서 금세 알아볼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단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노숙자는 얼마 전 1천500달러가 든 봉투를 주워 경찰서에 맡겼다. 어느 날 아침 밤을 새운 공원 벤치에서 일어나 어슬렁거리다가 발에 밟히는 것이 있어 내려다보니 봉투를 삐져나온 많은 지폐들이었다. 돈 봉투를 경찰에게 건네주면서 그는 "나야 어차피 집이 없는 신세지만 그 돈이 어느 가족의 집세일지도 몰라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1976년 9월 10일 오웅진 신부가 충북 무극읍에서 황혼길에 한 거지를 만났다. 그의 동냥 깡통에는 자신이 먹고도 남을 많은 음식을 잔뜩 담겨 있었다. 오 신부가 따라가 보니 다리 밑에는 몸이 아픈 거지 18명이 누워있었다. 그 거지가 바로 유명한 김귀동이란 사람이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라는 말은 꽃동네 자신의 동상 아래 큰 비석에 새겨져 있다. 돈이 없어 노숙자나 거지가 됐더라도 인간성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순자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존재라고 했고, 맹자는 인간은 원래 착한 존재라고 했다. 두 사람의 미국 노숙자와 한 사람의 한국 거지를 보면 돈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순자와 맹자 중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권영재 대구의료원 신경정신과 과장'서구정신보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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