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테이크아웃 5호점

즉석은 간편해서 좋다

포장된 관계에는 거리가 빠져있다

메뉴 중에 아무거나 골라도 부담없다

그냥 서로를 천천히 흔들면 된다

기포가 생긴 웃음을 터뜨리면서

사랑하는 순간에도 헤어질 수 있다

용기의 모양에 따라 깊이가 다른 심연

균일하게 디자인된 로고는 갈등하지 않고

줄어든 행복을 모색하지 않는다

서로의 몽상을 외면하며

구겨버린 시간을 모반하지 않고

우리는 쓰레기통이 보이면 바로 끝난다

몸을 포개고 이별하는 특별한 사이라서

서로의 외로움에 밀착한다

슬픈 기억은 얼른 맞잡을 줄 아는

종이그릇처럼 착한 우리는,

 

이영옥

'테이크아웃'이라는 이 신식 말이 이제 낯설지 않다. 이 도시에도 한 집 건너 한 집일 정도로 생겨난 패스트푸드점이 성업 중이다. 커피숍에 앉아 카푸치노나 에스프레소 한 잔 홀짝거리다보면 꽤나 문명인이 된 듯하니 이 유행이라는 물결을 누가 막을지.

테이크아웃이란, 스피디한 이 시대에 걸맞은 소비행태이겠지만 거기엔 무언가 빠져 있다. 기계가 쪼르르 내린 그 검은 물에는 분명 무언가가 빠져 있다. 어머니가 빠져 있고, 내가 빠져 있고, 그리움이 빠져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순간에도 헤어질 수 있다"고 담담히 말하는 것일까.

하루하루 온기가 없이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나날이다.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면서 동참하지 않으면 구태가 되고 나태가 되는 속도들. 심장이 없는 음식을 먹고, 내용이 없는 즐거움을 나누고, 고통이 없는 시간을 사는 시대여! 간편해서 아름다운 시대여!

여보, 우린 오늘 저녁에 무얼 테이크아웃 할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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