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결핵, 감기처럼 얕보거나 쉬쉬하면 위험"

오늘은 세계결핵의 날 대구요양원에 가보니…

'세계 결핵의 날'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 결핵환자의 입원보호 및 치료센터인 대구요양원에서 결핵환자들이 재활작업을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결핵은 부끄러운 병이 아닙니다. 병을 숨길수록 자신만 위험해질 뿐입니다."

23일 오전 대구 달성군 논공읍 본리리 대구요양원 1층. 침대에 앉아 있던 김명호(가명'35) 씨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김 씨는 결핵환자 전문 요양원인 이곳에 2년 전 들어왔다.

"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2007년 3월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땐 결핵이 이렇게 심각한 질병인지 차마 알지 못했죠." 김 씨는 금방 나을 줄 알았지만 결핵은 생각보다 끈질겼다. 병원에서 결핵 양성판정을 받고 격리 수용돼 치료를 받았고, 혼자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요양원으로 옮겨왔다. 김 씨는 "감기 증상이 지속됐을 때 빨리 병원에 갔다면 건강이 지금처럼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결핵으로 삶을 마감하지만 결핵에 대한 인식은 '감기' 수준에 그치고 있다. 24일 '세계 결핵의 날'을 맞아 대구요양원에서 만난 결핵환자들은 한결같이 병의 심각성을 미처 알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2002년부터 결핵을 앓아온 김구형(가명'56) 씨는 "결핵 초기에는 6개월간 약만 잘 먹으면 완치가 된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 알았다. 기침을 하면 피가 섞여 나오고서야 병원에 갔다"며 "병원에서 정신을 잃고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결핵을 두고 '후진국 병' '무조건 전염되는 병'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병지(가명'57) 씨는 가족들의 이해 부족을 견디다 못해 2006년 이곳으로 왔다. 이 씨는 "결핵 양성판정을 받고 꾸준히 약을 먹었고 이후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가족들은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물론 내 옆에 다가오는 것조차 꺼렸다"며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요양원에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활동성(양성) 결핵만 호흡기를 통해 남에게 전염될 뿐 비활동성(음성) 결핵은 전염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곳 환자들을 돌보는 이상채 대구가톨릭대 교수(호흡기내과)는 "가래 검사를 해서 '균'이 발견되는 결핵을 활동성, 나오지 않는 결핵을 비활동성이라고 부른다. 비활동성 결핵을 앓는 환자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해서 결핵에 걸리지 않는다"며 "하지만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하면 재발할 확률이 높은 질병이라 사람들이 전염성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76년 문을 연 대구요양원은 세상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결핵환자 41명을 품어주고 있다. 대구요양원 최종수 사무국장은 "결핵환자라는 사실을 주변에 당당히 밝히고 가정에서 통원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결핵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아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결핵환자들이 이곳에서 치료와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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