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뮤지컬계에 슈퍼헤로인이 탄생했다. 반가운 것은 배우가 아니라 스태프 가운데서 스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TV 예능 프로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칼마에, 박칼린'이다. 이미 뮤지컬계에서는 '명성황후' '오페라의 유령' '노트르담 드 파리' 등 대형 뮤지컬 작품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며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무대에는 보여지지 않는 음악감독이라는 특성상 일반 대중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KBS2 TV '해피선데이'의 한 코너인 '남자의 자격'에서 오합지졸 남격 합창단의 지휘자로 참여, 탁월한 리더십과 인간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칼마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남격' 합창단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고 그녀 역시 많은 팬을 확보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에도 칼마에의 인기는 시들지 않았다. MBC TV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가 하면 트위터의 팔로어 숫자도 급격히 늘어 9만여 명의 팔로어를 가진 파워 트위터가 되었다. '박칼린의 리더십과 열정'에 주목한 광고주들의 러브콜도 잇따랐다. 그녀가 광고모델로 출연한 신한은행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동행'은 지난해 11월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광고 1위'를 차지하는 등 CF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 출간된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 '그냥'(Just Stories)은 주간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그녀는 뮤지컬 '아이다'의 국내 협력연출 겸 음악 슈퍼바이저로 뮤지컬계에 복귀했다. '아이다'는 그녀의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겨울 예매순위 1위를 고수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올해 초 그녀가 기획한 컴필레이션 음반 '칼린 셀렉츠'도 판매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그녀가 가는 곳마다 '박칼린 효과'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음악감독, 연출, 대학교수, 광고 모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가 이번에는 뮤지컬 배우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20년 전 연극 '여자의 선택'으로 무대에 선 후 20년 만에 다시 배우로 무대에 서게 되는 것이다. 박칼린이 선택한 작품은 올해 11월 공연이 예정돼 있는 록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이다. 2010년 퓰리처상, 2009년에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와 경쟁해서 토니상 3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뮤지컬이다. 16년째 정신병에 시달리는 엄마와 가족 간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이 시대의 가족들이 갖는 고통과 아픔, 사랑을 그리고 있는 뮤지컬로 탄탄한 구성과 함께 세련되고 비트 있는 록 음악이 강점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박칼린은 여자 주인공인 '다이애나' 역할을 맡게 된다. 브로드웨이에서 '넥스트 투 노멀'을 보고 '배우로서 이 작품에 참여해 보고 싶다'는 열망을 피력했던 그녀가 국내 제작사인 '해븐' 박용호 대표의 제안에 흔쾌히 출연을 승낙했다고 한다.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박칼린 음악감독이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이 필요한 이 배역을 맡아 배우로서 집중하고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필자는 그녀의 새로운 도전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녀가 배우로서도 성공하길 바란다. 그래서 또 한 번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뮤지컬계의 스타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한국 뮤지컬계는 외부에서 영입한 스타가 아니라 자생적인 스타가 필요하다. 한국 뮤지컬의 발전을 위해서 배우는 물론이고 프로듀서, 연출가, 작가, 작곡가 등 각 분야에서 더 많은 스타들이 배출돼야 한다.
아이돌 스타들이 팬들의 힘으로 권력을 가지듯이 뮤지컬계가 배출한 스타가 뮤지컬 발전에 기여하고 아울러 뮤지컬 제작 스태프들의 위상에 대해 재조명하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한두 사람의 스타가 아닌 제작진에 대한 믿음으로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게 되는 시절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스필버그라는 이름만으로 영화관을 찾는 것처럼.
최원준 ㈜파워포엠 대표이사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