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종벌 에이즈 덮쳐 종자벌 씨말랐다

작년 낭충봉아부패병 휩쓸어 5만원 하던 씨벌 50만원까지

예천에서 토종벌을 사육하고 있는 이충길 씨가 텅 빈 벌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권오석기자
예천에서 토종벌을 사육하고 있는 이충길 씨가 텅 빈 벌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권오석기자

25일 오후 예천군 하리면 시항리 이충길(67) 씨의 토종벌 사육장. 벌이 가득해야 할 벌통은 텅 비어있었다. 사육장 언덕에는 벌통 잔해만 곳곳에 흩어져 있어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5월 전국을 휩쓴 '토종벌의 에이즈'인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토종벌 300여 군(1군=2만5천 마리)이 모두 폐사한 탓이다.

이 씨는 "토종벌 종자를 구하기 위해 대구를 비롯해 강원도, 전라도 등 전국을 다녔지만 구할 수 없었다"며 "올해 토종벌꿀 농사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되(2.5kg)에 20만원 하던 토종 벌꿀은 올해 2배 이상 가격이 치솟고 구하기도 힘들다.

지난해 전국을 휩쓴 낭충봉아부패병과 지난 겨울 극심한 한파로 인해 토종벌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토종벌 농가마다 종자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종자벌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예년 5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던 종자벌이 지금은 10배나 되는 50만원을 주고도 물량 자체가 없어 구하기 어렵다는 것.

이 때문에 경북도가 토종벌 중심센터로 지정해 토종벌 육종에 나서고 있는 예천곤충연구소 조차 토종벌 종자 구하기에 애를 먹고 있다.

예천곤충연구소에 따르면 올해부터 2015년까지 6억5천만원을 투입해 토종벌 육종'보급에 나설 계획으로, 올해 6천만원을 들여 토종벌 종자 200군을 구입할 예정이지만 여의치 않다는 것.

예천곤충연구소 권천락 지도사는 "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까지 토종벌 200군을 확보해야 하지만 전국적으로 수소문해 130군을 구두계약만으로 확보한 상태"라며 "토종벌 종자가 거의 없고 가격도 너무 올라 물량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토봉협회 경북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낭충봉아부패병과 유례없는 한파로 인해 경북지역 2천376개 농가에서 사육 중이던 토종벌 2만9천849군 가운데 무려 98%가 폐사했다.

지성구 경북지부 회장은 "경북도는 지난해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인한 피해가 전체의 70% 정도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98%가 넘는다"며 "어렵게 종자벌을 구하더라도 낭충봉아부패병에 대한 확실한 예방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입식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토종벌이 떼죽음을 당해 현재로선 토종 벌꿀 농사가 불가능할 것 같다"며 "예천군에서 토종벌이 조기에 복원될 수 있도록 예산을 상반기 내에 집행하고 지속적으로 현장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권오석기자 stone5@msnet.co.kr

※낭충봉아부패병=꿀벌 유충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이 병에 걸린 유충은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말라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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