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류재성의 미국책 읽기] 『인종카드』탈리 멘델버그 저 (2001, 프린스턴대학출판부)

The Race Card: Campaign Strategy, Implicit Messages, and the Norm of Equality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성마르고 참을성이 없다. 어떤 주제든 오래 길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다. 대중들은 또한 이성과 논리 보다는 감정과 편견 혹은 고정관념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이 있으며, 공공의 이익보다는 자기 이익과 집단 이익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정치에서의 설득은 화려하거나, 과장되거나, 자극적이거나, 단선적이다. 설득하기 위해선 먼저 강한 언어로 관심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복잡한 논리나 고매한 화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정치의 언어는 그래서 많은 경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언어보다 더 세속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의 말이 돌발적, 무계획적으로 내뱉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는 설화에 해당한다. 오히려 많은 경우 효과가 입증된, 면밀하게 계산된 언어를 이용한다. 미국 정치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효과가 확실한 이슈는 '인종'이다. 그러나 이 예민한 이슈는 미국 사회가 어렵게 지키고 있는 인종 간 평등이라는 규범의 틀 안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 때문에 '인종 카드'이용에는 암묵적인 메시지 구성이 필수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악의적으로 인종 카드가 이용된 예는 '윌리 호튼'케이스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10%포인트 이상 뒤져있던 부시(H.W. Bush, 아버지 부시) 후보는 선두 주자인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인종카드를 빼어 든다. 윌리 호튼은 살인죄로 복역 중 보석으로 잠시 석방된 가운데 무장 강도와 강간을 저지른다. 범죄자에 온정적인 듀카키스를 공격하는 듯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윌리 호튼이 흑인이라는 명시적인 언급을 하지 않지만, 미국인들은 모두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윌리'는 윌리암의 애칭이지만 주로 흑인들의 그것이고, 백인들은 '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부시는 백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집권에 성공하지만, 그의 캠페인 전략은 가장 성공적인 인종카드 사용이라는 불명예를 안는다.

탈리 멘델버그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이 책은 인종을 중심으로 한 암묵적인 메시지 사용이 미국 정치에서 어떻게 이용되었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계명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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