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마트(대구시 수성구 수성동) 유병규(53'사진) 사장은 인생 2모작에 성공한 케이스다.
20세 때 대구의 모 섬유회사에 입사해 5년여를 현장에서 일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유 씨는 영업 활동을 하는 주위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보여 다니던 직장을 던지고 영업현장에 뛰어들었다.
국가자격시험 교재 판매와 회원 모집을 위해 전국을 발로 누비며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데 혼신을 다했다. 자기가 모집한 회원들 상당수가 국가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보고 보람도 느끼며 월 200만원 정도의 적지 않은 수입으로 안정적인 생활도 영위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집 한 채에 2천만원 정도 했으니 꽤 괜찮은 수입을 올린 셈이다.
유 씨는 다시 사업에 뜻을 품었다. 온천욕재 총판이라는 생소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생각처럼 사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없이 생소한 사업에 뛰어들어 고생만 했어요. 당시 온천욕재 총판은 사회적으로 '웰빙'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족한 시기였기에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업직으로 번 돈을 사업으로 모두 날린 후 재취업한 곳은 처음 발 디딘 섬유회사였다. 바뀐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현장직에서 관리직으로 채용됐다는 것이다. 이곳에 재취업한 유 씨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다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면서 재취업한 회사마저 그만두게 됐다. 그때 낳은 늦둥이(현재 15세)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창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40대 초반의 유 씨가 창업한 것이 지금의 미소마트다. 처음에는 33.3㎡(10평) 정도의 소규모로 출발했으나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3, 4차례 규모를 넓혀 지금은 7배 정도 늘어난 대규모(?) 매장을 갖춘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마트의 업무 특성상 오전 8시~새벽 1시까지 연중무휴로 신바람 나게 일했다. 작년에는 정부에서 골목가게 활성화를 위해 지원해주는 '나들가게'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월 9천여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알찬 가게로 발돋움시켰다.
전수영기자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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