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박눈 내린 소나무에 흙 냄새가 난다

갤러리M 5월8일까지 차규선 전

차규선 작
차규선 작 '매화'
차규선 작
차규선 작 '풍경'

소년은 경주의 소나무 아래서 자랐다. 소나무 아래서 걸음마를 시작했고, 그 그늘 밑에서 더위를 피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키운 것도 소나무 아래서다.

화가가 된 소년은 묵묵히 곁을 지켜주던 그 소나무를 그린다. 그에게 소나무는 삶의 배경이자 가족이다.

화가 차규선은 마음 속 고향같은 소나무 풍경을 그림으로 옮긴다. 누구나 그리는 초록색 물감 대신 흙으로 캔버스에 그린다. '누구나 그리는 소나무'가 아닌, 더 깊이감 있는 자신만의 소나무를 그리고 싶었던 작가는 분청사기의 기법을 차용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에 흙을 사용한 건 10년쯤 전이에요. 귀얄에 백토를 듬뿍 묻혀 그릇의 표면에 칠하는 귀얄기법을 그림에 도입했죠. 흙이 덜 마른 상태에서 긁어내는 것으로 분청사기와 같은 느낌을 살렸어요."

흙을 캔버스에 발라 긁어내는 기법을 사용하다가 최근 물감을 덧바르는 방식으로 기법을 바꾸었다. 그림이 한층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갤러리M에서 5월 8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서 그는 눈 덮인 소나무의 형상을 그렸다. 함박눈이 오는 가운데 눈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서 있는 소나무는 온화한 표정이다. 작가는 휘어진 채로, 때로는 꼿꼿하게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에 동양의 정신성을 담았다. "기법이 문인화와는 다르지만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합니다. 매화 역시 그런 의미죠."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매화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세계. 꽃그림이지만 작가만의 흥취가 담겨 있다. 배경과 만나는 매화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흰 벽에 걸린 매화 그림을 보노라면 마치 창문 밖에 매화가 가득 피어난 행복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작가는 2월부터 제주도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중섭 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된 것. 그는 자신이 만난 제주도의 풍경도 빼놓지 않고 그렸다. 그가 가장 '제주도답다'고 생각한 돌담을 독특한 터치로 표현했다. "바닷가든, 시내든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돌담이 가장 제주도다운 것이었어요. 자연스럽지만 조직적으로 쌓아 놓은 검은 돌담은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주지요."

검은 현무암과 대비되는 평화로운 제주 바다도 인상적이다. 제주도 바다를 바라보며 느낀 작가의 감흥이 넘실대고 있다. 053)740-9923.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