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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활의 고향의 맛] 낚싯배에서 먹는 가자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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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전에 앉아 비늘만 벗기고 통째로 회 쳐 먹는 맛 일품

버스는 바로 바다로 달려가지 않는다. 대구 시내 서쪽 끝까지 가서 그곳에서 기다리는 꾼들을 태워 휙 한 바퀴 돌아서 내려간다. 새벽 2시 포항에 도착하면 밤참을 먹거나 미끼를 사느라 모두가 분주하게 설쳐댄다. 미끼는 청 지렁이를 주로 쓰는데 항상 욕심이 앞서 많이 산다.

민물 붕어낚시의 승률은 3할(30%)대 정도로 '혹시'하며 떠났다가 '역시'하며 돌아오기가 다반사다. 그러나 도다리 낚시는 빈 망태로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도 자연과의 대결이어서 많이 잡힐 때도 있고 적게 잡힐 때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조과가 시원찮아도 가자미회는 그런대로 맛보고 돌아올 수 있다.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낚시를 가면 그게 안 된다. 미끼도 두어 봉지만으로도 충분한데 세 봉지를 산다. 남들은 낚싯대를 한 대만 펴는데 나는 뱃머리(이물)에 역방향으로 앉아 좌우로 두 대를 펼친다. 내 낚싯대 손잡이에는 고무줄이 달려 있다. 물린 고기를 끌어올릴 때 다른 낚싯대를 발끝에 걸어두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나는 손으로만 낚시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발까지 동원하는 셈이다.

미끼도 가자미들이 볼 때 밥상이 푸짐하도록 바늘 하나에 지렁이도 여러 마리를 꿴다. 그래야 잔챙이들은 달려들지 못하고 입 큰 대물들이 덤빈다. 출조 때마다 돌 문어 몇 마리를 포함하여 가자미를 아이스박스 가득 잡는 것이 목표지만 한 번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기야 뜻과 꿈이 꾸는 대로 이뤄진다면 이 세상 무슨 살맛이 나겠는가.

버스가 새벽 4시 조금 지나면 울진을 지나 죽변 항에 도착한다. 낚시가이드가 출항계를 받아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만약 풍랑이 크게 일 조짐이 보이면 허가는 나지 않는다. 날씨가 좋으면 한 시간 정도 달려 오전 5시30분에는 낚싯줄을 드리울 수 있다.

가자미 낚싯배는 3, 4명이 타고 바다로 나간다. 배들은 정치망을 쳐둔 어장의 밧줄에 뱃머리를 묶고 작업을 하게 된다. 밧줄이 오래되면 물때가 끼어 벌레들이 생기게 된다. 그 벌레들은 외줄타기에 실수할 경우 떨어져 가자미들의 먹이가 된다. 가자미들은 용케 그 사실을 알고 어장 밑바닥에 집단촌을 형성하여 먹고 마시고 새끼도 친다.

꾼들은 천평칭 저울처럼 생긴 낚시채비에 미끼를 꿰어 바다 속에 내린 다음 천천히 고패질을 한다. 가자미들은 납으로 된 추가 일으킨 모래 먼지를 보고 달려와 미끼를 덥석덥석 문다. 큰놈이 물 땐 손끝에 감각이 전해지지만 잔챙이는 물어도 기별이 없다. 어쩌다 돌문어가 물리면 큰 걸레가 걸린 듯 감촉이 묵직하다.

가자미들이 한창 올라오기 시작하면 선장은 벌겋게 녹슨 부엌칼을 지휘봉처럼 흔들며 고함을 친다. "잔챙이는 모두 내 앞으로 던져." 그때부터 가자미는 회가 되고 선상 파티의 세팅작업이 시작된다. 선장은 무뎌보이는 칼로 겉 거죽의 비늘만 벗겨내고 뼈와 지느러미를 가릴 것 없이 통째로 회를 친다. 코펠에 담긴 푸짐한 가자미회에 초고추장이 부어지면 젓가락 놀림이 무척 바빠진다.

나는 지금도 가자미회는 낚싯배 뱃전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을 먹어 본 적이 없다. 단언하거니와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소주 한 잔 마시고 나무젓가락이 휘도록 회를 집어 먹는 맛은 정말 일품이다. 어느 해 여름에는 뱃머리로 돌아오는 와중에 발을 헛디뎌 바다로 떨어진 적이 있다. 낚싯대마저 버리고 겨우 기어 올라오니 선장이 화난 얼굴로 "죽을라 카나, 살라 카나"라며 나무랐다. "수심이 얼만데요?" "50m밖에 안되지만 조류에 휩쓸리면 이 배가 못 따라가." 나도 자칫했으면 밧줄에서 떨어진 벌레처럼 가자미 밥이 될 뻔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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