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행복의 조건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옛날에도 많은 사람이 행복을 위해 권력과 부를 좇았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는 청빈을 큰 덕목으로 여겼다. 그 출처가 도덕경이나 장자쯤일 듯한 안빈낙도(安貧樂道)가 논어에 실려 있고, 이 말이 사람이 지켜야 할 삶의 큰 덕목이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행복한 삶의 기준이 물질에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과거에는 감히 내놓고 말하지 못하던 것을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차이겠지만, '가난은 죄'라는 말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방글라데시 국민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게 나왔다는 결과는 어느 외계 행성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된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행복이 아무리 마음먹기에 달렸다 해도 물질문명이 주는 화려함과 편리함에 젖어 있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영국의 텔레그래프지는 삶의 만족도와 행복을 향상시키기 위한 행동 지침을 소개했다. 베풀고,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다. 또 운동하고,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들어 있다. 뒤틀린 심사로 본다면 이 행동 지침은 모든 이에게 고루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충분히 안정적인 사람이 좀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게 하는 도움말 정도이다.

지리적 위치와 세월의 흐름 때문이겠지만 이 행동 지침을 옛 글과 비교해 보면 많은 괴리가 있다. 공자는 논어 술이 편에서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로 삼으니 즐거움이 바로 그 가운데 있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고 했다. 옹야 편에서는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곳에 살아도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一簞食一瓢飮在陋巷 不改其樂)며 제자 안회의 어짊을 극찬했다. 요즘 눈으로 보면 속되게 말해 그야말로 '공자님 말씀'이다.

그럼에도 이 말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것이 사람의 욕망이지만 이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물질이 아니라 뭔가 지향해야 할 정신적인 어떤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브레이크가 풀린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욕망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겠는가?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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