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재스민 혁명과 무궁화 혁명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이 나라가 세금 잘 내고 법만 잘 지키면 국민 뜻대로, 마음먹은 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국민) 마음대로, 생각대로, 바라는 대로 굴러가는 게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입니다. 욕심대로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렇게든 저렇게든 '해야 하고' '돼야 한다고' 믿는 일들이 상식대로 돼 가거나 민심과 일치되는 게 없다는 말입니다.

통치그룹은 정치, 안보, 경제 다 그런대로 돌아가는데 뭐가 안 되고, 못 하고,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소한 것만 돌아보십시오. 최전방 애기봉에 등불 켜는 것 하나만 해도 국민 생각대로, 군(軍) 뜻대로 못 합니다. 국방은 군(軍)이 맡았으니 심리전이든 뭣이든 군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켜야 옳은데 장군들 맘대로 켤 수 없습니다. 내 영토 안에, 내가 만든 등(燈)에 내 군대가 켜고 싶어도 북한 눈치, 김정일 안색 살펴가며 켜야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고 동족 간의 평화와 자비를 생각하자는 등불인데 그걸 왜 북한과 일부 종교계 눈치 봐가며 켜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국민과 모든 불자(佛子)들이 다 켜지 말자고 했다는 얘기도 여론조사도 없습니다. 그저 보이지 않는 '이상한 분위기' 하나 때문에 석가탄신일마저 정치 더미 속에 묻혔습니다.

금융권에 맡긴 돈도 그렇습니다. 국민이 언제든지 필요할 때 쓰려고 맡겨놓은 돈을 걸핏하면 자기네들 신용 관리 불량으로 일 저질러 놓고 다 못 내주네 어쩌네 합니다. 개인 정보는 동네 정보처럼 새 나갑니다. 서민들 간이 콩알만 해지지요. 거대 농협까지 며칠째 갈팡질팡 국민들 돈 관리를 못 해 난리를 쳤습니다. 그게 농협뿐일까요. 약탈당한 문화재(조선의궤)를 잠시 되돌려받았다지만 그것도 국민 맘대로, 생각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조상이 남긴 강도 맞은 보물을 찾아와 놓고도 프랑스 사람들이 허락해야 열람, 영인본 출간 등 학술 연구를 할 수 있답니다.

내 손에 있어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못하는 건 또 있습니다. 국가 경제를 위한 EU FTA협정 비준 동의안 하나도 국민 생각에 못 맞춰냅니다. 여당끼리는 쪼개지고 공중 부양 전문 국회의원의 팔 힘 앞에 '국민 생각' 같은 건 허깨비입니다. 국회도 국민의 국회가 아닌 것입니다. TV에는 불륜 막장 드라마에다 쩍벌춤의 선정성이 넘쳐도 내 맘에 드는 채널 고르기가 마땅찮습니다. 시청료만 냈지 내 TV가 아닙니다. 국민 맘대로가 아니라 국민을 마음대로 갖고 노는 사람들이 설치는 대로 당하고, 봐야 합니다. 외국에 도망 나가서까지 업자 돈 7천만 원씩 받아먹었다는 전직 국세청장이 불구속돼도 단돈 몇십만 원 받아먹고 감옥 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입도 뻥끗 못 합니다.

국민 마음과 같이 굴러가는 게 몇 가지나 됩니까. '국민 생각과 다른' 일들이 과도하게 넘치면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불만이 쌓이고 불만은 혁명을 부릅니다. 자유 민주사회에서의 불만이란 꼭 정치적 불만뿐이 아닙니다. 중동 지역의 혁명들이 물가고와 오랜 독재, 권력자의 부패에서 비롯됐다지만 깊은 속에는 국민 생각과 다른, 국민이 해야 된다고 또 돼야 한다고 믿는 것과 다르게 굴러간 게 많았기 때문에 터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겐 내면의 혁명이 필요합니다. 중앙아시아의 튤립 혁명,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그루지야의 장미 혁명처럼 시민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21세기 시민혁명의 이름엔 꽃 이름이 많이 붙여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혁명은 '무궁화 혁명'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무궁화 혁명은 탱크를 앞세우거나 돌멩이를 든 유혈 혁명이 아닙니다. 국가와 국민 이익에 턱도 없는 짓거리를 해대고도 멀쩡한 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 국민 생각과 다르게 일 저질러도 먹혀드는 것, 그래서 계속 반복해 먹는 오만, 그런 '쓰레기'를 쓸어 낼 정신적 쓰나미 혁명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혁명의 이유는 또 있습니다. 쓰나미가 필요한 쓰레기들로 썩는 냄새가 나도 내 문제가 아니면 내 코만 돌리고 외면합니다. 내 것만 손해 안 나면 보고도 못 본 체들 합니다. 집단이기의 체념이고 면역성입니다. 모두의 공동 책임이 돼 갑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독(毒)인지도 모릅니다. 무언가 변화의 쓰나미 물결을 일으키고 바꾸는 모두의 자성(自省)과 의식의 대혁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대로는 언젠가 더 큰 난리가 납니다. '무궁화 혁명' 지금도 늦습니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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