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金剛), 봉래(蓬萊), 풍악(楓嶽), 개골(皆骨). 잘 알려져 있듯 금강산은 계절에 따라 다른 이름을 갖는다. '꿩의 보은'으로 유명한 원주의 치악산도 가을만큼은 본명을 잠시 접어두고 '적상'(赤裳)으로 불린다. 온 산이 붉다는 시적 은유다. 계절 별칭을 갖는다는 것은 호사를 넘어 산에 대한 극진한 예우의 한 형태다. 이 때문에 웬만한 명함으로는 이런 대접을 받기 힘들다. 이번에 마이산에서 사계절 애칭을 발견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봄 돛대, 여름 용각(龍角), 가을 마이(馬耳), 겨울 문필(文筆). 언제부터 이런 호칭이 있었을까. '국민산'급에만 붙여준다는 사계절 별명, 어떻게 호남의 작은 산에 붙게 되었는지 그 비밀을 찾아 진안으로 떠나보자.
◆호남의 지붕 진안고원 한복판에 우뚝=한때 호남의 외진 곳의 대명사로 불리던 '무진장'(무주'진안'장수). 오지 속 '느림의 가치'들이 새롭게 빛을 발하면서 이제 웰빙도시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호남의 지붕으로도 불리는 진안고원은 북한의 개마고원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산지대. 진안은 산지로서의 특성뿐 아니라 물길의 시작이기도 하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는 자체로 분수령이 된다. 북쪽 사면으로 흐르는 물은 용담호를 거쳐 금강으로 흘러들고 서쪽 절벽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으로 향한다.
마이산은 태조 이성계와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고려 말 남원 운봉에서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를 소탕하고 마이산에 들른 이성계는 꿈속에서 산신으로부터 '삼한(三韓) 강토를 헤아리라'는 계시와 함께 금척(金尺)을 하사 받았다. 새 왕조 개창을 위한 일종의 자가발전이자 선전(宣傳) 행위였다.
마이산의 나이는 약 1억여 년. 중생대 백악기 당시 이곳은 공룡들이 목을 축이던 호수였다. 이 지역에 홍수 때 유입된 자갈과 모래가 퇴적해 약 2천m 두께의 역암층으로 변했다. 이 역암은 7천만 년 전쯤에 지각변동으로 지표면에 솟아 오른 후 차별 침식과 풍화를 거쳐 지금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탑사 쪽에서 올려다보면 마이봉 절벽에 벌집모양으로 뚫려있는 작은 동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타포니(tafoni)로 불리는 이 동굴들은 역암이 풍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들이다.
무채색 갈필(葛筆)로 어지럽던 계절은 어느새 연분홍 세필(細筆)로 곱게 물들었다. 호남 들녘까지 밀어닥친 봄기운은 고원의 쫑긋한 두 귀를 간질인다.
버스가 진안에 들어서자 마이산이 일행을 반긴다. 우람한 두 귀는 보는 각(角)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모양을 바꾼다. 조선시대 학자 김종직은 '아름다운 봄 죽순 같은 자태를 서로 사랑할 뿐 기댈 수는 없다'고 노래했다.
일행은 합미산성 입구를 찾아 들었다. 이번 등산로는 합미성-광대봉-고금당을 거쳐 마이산-탑사로 내려오는 9㎞ 코스. 이 코스는 안내를 맡은 지홍석(산정산악회) 대장이 20여 년 전 개척한 루트다. 지 대장은 옛날 나무꾼들이 다니던 희미한 산길을 구간구간 이어 붙여서 지금의 코스를 만들었다.
◆노령산맥의 줄기를 한 흐름으로 조망=산성에서 광대봉까지는 완만한 경사길. 들판 채소들은 이제 막 움을 틔운다. 산중의 신록은 아직 이르다. 지루한 산길, 길옆에 도열해 있는 철쭉이 산객들의 여독을 풀어준다. 진홍의 물감을 쭉 짜놓은 듯한 현란한 색감에 '안구(眼球) 호강'은 제대로다.
1시간 30분, 꼬박 3.3㎞를 걸어 광대봉에 도착한다. 동쪽으로 조망이 뚫리며 마이산, 삿갓봉, 비룡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선 굵은 능선을 따라 진안고원의 봉우리들이 산너울을 펼쳤다. 광대봉 난간에서 철쭉을 소품 삼아 마이산 사진을 몇 컷 찍고 봉우리를 내려선다. 광대봉 내리막길은 70, 80도의 급경사 길. 까마득한 절벽을 따라 철계단은 200여m나 계속된다.
다시 평지가 나오고 일행은 비룡대를 향해 스틱을 내딛는다. 강정리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 528봉으로 들어선다. 반짝이는 금기와로 단장한 고금당이 눈에 띈다. 고금당에서 또 한 번 급경사를 요동치면 용이 날아오른다는 비룡대. 전망이 좋아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광대봉에서 작고 앙증맞았던 마이산 두 봉우리는 이제 거대한 암봉으로 눈앞에 다가선다. 연무에 가려졌던 운장산과 노령산맥의 산군들도 아스라이 파노라마를 그렸다. 이제 산행은 종반부. 삿갓봉 갈림길을 지나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갑자기 왁자지껄한 인파소리가 요란하다. 한걸음에 내달으니 탑사(塔寺).
◆이갑룡 처사 30년 동안 홀로 108탑 세워=경내로 접어들자 우아한 독경을 배경으로 수십 기의 돌탑들이 눈앞을 막아선다. 약 80여 개의 탑들이 제각기 자리를 잡고 서있다. 큰 것은 3, 4층 높이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한다. 어떤 접착제나 인공물의 흔적이 없는데 100년 넘게 폭풍우를 어떻게 견뎠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구한 말 이곳에서 수도하던 이갑룡(1860~1957년) 처사가 계시를 받고 30년 동안 홀로 108탑을 쌓았다고 한다. 인근 30리 안팎에서 조달한 돌로 기단을 만들고 축지법을 써서 전국 명산에서 날라 온 돌들에 기(氣)를 담아 세워 올렸다고 한다.
탑사의 감동을 뒤로하고 일행은 은수사(銀水寺)로 오른다. 은수사는 신비주의자들에게 '시크릿 가든'으로 통한다. 겨울철 청실배나무 근처에서 역고드름 현상이 생기는 까닭이다. 태조 이성계가 꿈에서 국가를 재단(裁斷)하라는 금척(金尺)을 받은 곳도 이곳이다. 절 뒤편으로 계단을 5분쯤 오르면 천황문.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만나는 고개다. 이 고개를 기준으로 섬진강과 금강이 갈린다. 말 그대로 분수령이다.
은수사를 돌아 나오는 길. 벚꽃이 터널을 이루었다. 길옆으로 마이산 절벽이 아찔한 예각(銳角)으로 서있다.
지금 이 길엔 1억 년 전의 타포니, 600년 전의 태조, 100년 전의 돌탑이 동시진행형이다. 눈앞에서 부서져 내리는 중생대 역암이 태조의 전설보다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지질학과 역사의 어색한 동거, 시공의 경계는 애매하다. 비산(飛散)하는 벚꽃만이 공간의 간극을 메워줄 뿐.
◆교통=88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함양에서 통영-대전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장수에서 다시 익산-포항고속도로로 바꿔 탄 후 진안IC에서 내린다. 30번 지방도를 타고 마이산도립공원 표지판을 보고 진행한다.
◆맛집=진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요리, 애저찜이다. 생후 한 달 된 새끼돼지를 재료로 쓴다. 왕실 수라상에 진상도 했다고 한다. 가격은 4만원이며 4, 5명이 먹기에 적당하다. 진안읍 금복회관(063-432-0561).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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