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With 라이온즈 열정의30년] ⑥마침표를 찍지 못한 1985년 통합우승

전 후기 통합우승에도 날아간 MVP

9월 30일 시상식에 앞서 다양한 팬서비스와 우승 축하 청백전이 열렸다.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선수들. 삼성 라이온즈 제공
9월 30일 시상식에 앞서 다양한 팬서비스와 우승 축하 청백전이 열렸다.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선수들. 삼성 라이온즈 제공

1985년 9월 17일, 삼성 라이온즈는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던 '정상'에 섰다. 전'후기를 통째로 삼키며 한국시리즈를 무산시킨 삼성은 만년 우승팀이란 꼬리표를 떼고 전년도 우승컵을 내준 롯데의 홈구장에서 헹가래를 치며 '복수'를 마감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영예에 삼성 그룹 전체가 들떴다. 출범 이후 4년 동안 타 팀이 넘볼 수 없는 금액인 80여억원을 투자하며 이루고자 했던 우승이 확정되자 삼성은 지갑을 열었다.

17일 식사를 곁들여 TV로 야구경기를 보던 신세계 유한섭 사장과 박홍기 전무 등은 삼성의 '통합우승' 순간의 감격에 대대적인 세일을 결정했다. 삼성전자'삼성물산'제일제당 등 계열사도 일제히 세일 행렬에 동참했다. 삼성 연고지 대구백화점도 사은행사를 열어 통합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삼성은 2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선수들에게 5천만원의 보너스를 지급하고 3만 명의 어린이 회원들에게 시가 5천원 상당의 기념품을 증정했다.

부산 원정을 마치고 21'22일 OB와의 시즌 마지막 2연전을 위해 대구로 향한 선수단은 입성과 동시에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지프에 몸을 실었다. 당시 주장 함학수(전 강릉고 감독)는 "개선장군이 된 듯했다. 미리 준비된 지프에 오르자 인도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가는 곳마다 사인 세례를 받았고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게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전년도 한국시리즈를 놓치고 대구에 오지 못해 칠곡에서 해산해야 했던 설움을 씻어내고도 남을 만큼의 대대적인 금의환향이었다.

30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거행된 시상식은 행사 2시간 전부터 1만5천 명의 관중이 들어찼고 멀리던지기'멀리치기 등의 팬서비스로 무료함을 달랜 관중들은 우승 축하 청백전을 만끽하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서종철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주장 함학수에게 우승트로피를 전달하자 시상식은 절정에 달했다.

선수들은 사인회, 각종 방송 출연으로 시즌을 회고하느라 바빴다. 이건희 구단주는 전용종합연습장인 경산볼파크를 선물했다. 1986년 2월 착공에 들어가 87년 6월 준공된 볼파크는 동양 최대 규모였다.

삼성의 완전우승에 시기의 눈총도 없진 않았다. 예년 같으면 후기리그가 중후반으로 접어드는 8, 9월, 각 팀의 막바지 각축전이 한창 불을 뿜으며 관중들의 함성이 떠들썩했던 상당수 경기장은 발길을 돌린 관중들로 빈 의자만 남았다. 그해 정규시즌 관중은 168만8천여 명. 전년보다 2만4천여 명이 늘었지만 그해 OB가 충청도에서 서울로 입성, 경기장 규모가 확대됐고 경기 수도 100경기에서 10경기가 늘어난 점을 고려할 땐 그해 관중 모객은 마이너스였다. 실제 평균 관중은 5천116명으로 전년도 5천549명에 비해 줄었다.

"삼성 독주로 올 장사 망쳤다"며 한국야구위원회가 울상을 지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년도 7차전까지 가는 대혈전으로 16만2천 명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이며 관중수입금만 4억원을 거둬들인 KBO로서는 한국시리즈 무산이 가져온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종합승률제'가 이상적인 제도라 여겼던 KBO는 시행도 해보지 못한 채 1986년부터 ▷전-후기 모두 2위 안에 들면 한국시리즈 직행 ▷전-후기 한 번만 2위 안에 들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방식의 가장 복잡한 크로스토너먼트를 도입했다.

통합 타이틀 쟁취는 두터운 선수층과 응어리진 한(恨)이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자극했던 결과였지만 삼성은 그해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지 못했다. 삼성 김시진'이만수'장효조는 투수'포수'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 삼성은 6개 구단 중 가장 많은 포지션에서 최고의 선수를 배출한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그해 별 중의 별인 최우수선수(MVP)는 엉뚱하게 해태 김성한의 차지가 돼 버렸다.

우승팀 삼성엔 25승을 거두며 다승왕을 차지한 김시진(25승1무5패 10세이브'승률왕)'김일융(25승6패)이 있었고 이만수는 22개의 홈런으로 1위에 올라 3년 연속 홈런왕에 등극했고 타점(87점)과 승리타점(13점)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장효조는 타율 0.373의 고타율에 출루율(0.476)까지 1위에 오르며 첫 MVP 수상에 한발 다가서 있었다.

그러나 13명의 기자단 투표(평가방식 1위-10점, 2위-5점, 3위-2점)에서 이들은 고배를 마셨다. 홈런 공동 1위'장타율 1위'타격 3위의 해태 김성한이 삼성 트로이카를 물리치고 영광은 안은 것. 장효조는 66점, 김시진은 52점을 받았으나 89점에 이른 김성한을 따라잡지 못했다. 당시 매일신문은 서울지역 기자단만 투표에 참여한 MVP 선정의 모순을 지적하며 "기록은 뒷전으로 한 채 상 배분에 신경 쓴 최악의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장효조 삼성 2군감독은 "삼성에서 MVP 후보가 많아 표가 분산된 것으로 여겨진다"며 "하지만 그해 삼성이 통합우승을 했고, 셋(장효조'이만수'김시진) 중 누가 받더라도 이견을 달 수 없을 만큼 최고의 성적을 냈다. MVP는 삼성의 몫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대구방송 최종문 해설위원은 "삼성이 MVP를 놓치며 완결 무결한 통합우승의 가치가 퇴색됐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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