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는 변모(82'대구 북구 대현동) 할머니는 길을 나설 때마다 불안감이 크다.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목에 걸고 다니던 무선 호출기로 즉시 연락이 가능했지만, 올 들어 사업이 중단되면서 소방서에서 호출기를 수거해 가버렸다. 변 할머니는 "2년 전 겨울, 언덕에서 넘어져 꼼짝할 수 없었을 때 단말기 덕분에 큰 사고를 피했다"며 "휴대전화도 없는데 또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119에 연락하란 말이냐"며 난감해했다.
홀몸노인이 응급구조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119구조대에 바로 연락할 수 있는 호출기 보급 사업이 중단된데다 이를 대체한 응급전화와 팔찌는 콜 기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구시 등에 따르면 홀몸노인이나 중증 장애인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응급 구호 시스템은 '무선페이징 시스템'과 'U안심콜' '안심팔찌' 등 3가지다. 지난 2001년 도입한 '무선페이징 시스템'은 위급 상황 시 전화로 구조 요청을 하기 힘든 노인이나 중증 장애인이 호출기를 누르면 자동으로 119구조대에 신고, 구조받을 수 있게 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지난 2007년 정부는 이용 실적 저조와 예산 부담 등을 이유로 무선 호출기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유지'보수할 돈이 없다 보니 고장난 단말기는 전부 폐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2008년 5천여 대나 보급됐던 무선 호출기는 2년 만에 절반 수준인 2천600여 대로 줄었다. 호출기를 통한 신고 건수도 2008년 1천454건에서 지난해 979건으로 감소했다.
대신 정부는 'U안심콜'과 '안심팔찌'를 도입했지만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있으나마나'한 물건으로 전락하고 있다. 콜 기능이 없고 단순히 환자에 대한 병력이나 개인 정보만 담겨 있기 때문이다. 'U안심콜'은 응급 상황에 처했을 때 유'무선 전화로 신고하면 환자에 대한 신상 정보나 병력이 자동으로 119구조대에 통보되는 시스템이다. 대구에서만 1만2천여 명이 등록된 상태지만 호응도가 낮다. 홀몸노인이나 중증 장애인들도 인터넷을 이용해 본인의 정보를 직접 등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고자의 위치도 알 수 없고, 병을 앓을 때마다 일일이 병력을 추가해야 한다.
'안심팔찌'도 소용이 없긴 마찬가지다. 안심팔찌에는 환자 개인의 과거 병력이나 주소, 연락처 등을 저장한 칩이 내장돼 있다. 심혈관 질환이나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들이 정신을 잃더라도 병원이나 119구조대가 환자에 대한 정보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한 것. 대구시는 지난해 3억5천만원을 들여 팔찌 1만 개를 보급했고, 올해도 5억원을 투입해 1만5천 개를 추가 보급할 계획이다. 이희선(82'북구 대현동) 할머니는 "안심팔찌는 그냥 차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이사하고 바뀐 주소를 팔찌에 입력하려면 동주민센터까지 찾아가야 해 불편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U안심콜이나 팔찌는 예산 부담을 줄일지 모르지만, 응급 상황에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홀몸노인이나 장애인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무선 호출기가 들어간 돈에 비해 이용실적이 적다지만 사람 목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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