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문기술 익혔더니…"우리도 당당한 한국여성"

결혼이민 여성들, 간병사·미용사·원어민교사…

필리핀 출신인 전수민 씨는 교사경력을 살려 달서구 성당아동센터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필리핀 출신인 전수민 씨는 교사경력을 살려 달서구 성당아동센터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13일 오전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의 한 병원 입원실. 침대에 누워 있던 환자가 괴로운 듯 '컥컥' 소리를 냈다. 곁을 지키던 베트남 여성 응웬틸리엔(33'여) 씨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환자의 목에 호스를 넣고 이물질을 제거했다. 거칠었던 환자의 숨소리가 이내 고르게 잦아들었다. 물리치료 시간이 되자 응 씨가 환자를 조심스레 안아 휠체어에 앉혔다.

응 씨는 4개월 전부터 전문 간병사로 일하고 있다. 간병사로 나서게 된 건 남편 때문. 2008년 7월 신혼의 달콤함이 가시기도 전에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2년 6개월 넘게 남편을 간호했어요. 그동안 남편은 증세가 많이 좋아졌고 남편을 간병한 경험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어요. 마침 구청에서 운영하는 '간병사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죠."

5주간 전문 교육을 마친 응 씨는 간병사로 활동하고 있다. 응 씨는 "통역'번역일을 하기 위해 틈틈이 한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며 "앞으로 메이크업 자격증도 따고 싶다"고 했다.

전문기술을 익히거나 모국어 구사 능력을 십분 활용해 전문직업인의 길을 걷는 결혼이민여성들이 늘고 있다. 단순 노무직이나 제조업에 주로 종사하던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자립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 것.

필리핀 출신인 전수민(31'여) 씨는 달서구 성당아동센터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 7년 된 전 씨는 필리핀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지에서 5년간 고교 교사로 일한 경험을 살렸다. 아이들에게 영어로 동화를 읽어주는 게 그의 주된 일이만 필리핀 전통의상을 보여주거나 필리핀어를 가르치는 등 다양한 문화 체험도 곁들여 원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이들 결혼이주여성들은 간병사, 원어민 교사는 물론 제과'제빵기능사, 한식조리 기능사, 피부미용사, 네일아트 등 다양한 분야로 뛰어들고 있다. 상대적으로 차별이 적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데다 평소 꿈꿔왔던 직업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출신의 W(21'여) 씨는 "미용사로 일하는 게 꿈이었는데 베트남에서는 교육을 받기 힘들어 포기했었다"며 "한국에 와 다시 미용실에서 일하며 잊었던 꿈을 이뤄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와 각 구'군 등 다문화가족지원기관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직업자활프로그램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대구시의 경우 지난해 8월부터 다문화가족 직업능력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달서구가 매달 20시간씩 운영하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 대비반에도 40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법무부 이민정책자문위원회 김혜순 위원장(계명대 사회학과 교수)은 "결혼이민여성들의 사회진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다문화가족 지원기관의 직업자활프로그램 활성화와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와 적응교육, 가정 유지, 취업 등 단계별로 세분화해서 지원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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