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지란지교와 관포지교

우리는 우정을 이야기할 때 관포지교(管鮑之交)와 지란지교(芝蘭之交)를 떠올린다. 둘 다 돈독한 우정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관포지교는 끝없이 이해하고 베푸는 믿음직한 우정으로, 지란지교는 늘 옆에 있어서 아기자기하게 정을 나누는 향기로운 우정으로 와 닿는다. 일전에 고교친구를 만났더니, 자주 만나지도 못하면서 서로 각별히 막역하게 여기는 것에 대하여 자신의 아내는 이해를 못하더라고 했다.

내게는 힘든 순간마다 늘 친구가 있었다. 교실에서 오줌을 참다가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말았던 초등학교 입학 무렵, 봄바람 부는 양지에서 바지가 마를 때까지 같이 있어준 정이 많은 친구, 버스 통학을 하던 중학교 시절 차비가 없을 때 집까지 묵묵히 같이 걸어가 주던 의리 있는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수업 빼먹고 앞산에 올라가 시를 쓴답시고 폼을 잡기도 하였으며, 자취방에 모여 바둑을 두고 기타를 치면서 낭만을 나누었다. 예비고사를 치자마자 어느 선술집에서 젓가락 장단에 맞춰 막걸리를 마시며 자유와 치기로 몰려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은 가난했지만, 열정과 친구가 있어 따뜻한 시절이었다. 소주에 과자부스러기를 놓고 시국을 논하고, 부모님이 매월 보내주시는 향토장학금이 동이 날 즈음, 친구 셋이 탈탈 털어 모은 돈으로 산 번데기를 나눠먹으며, 마지막 한 개를 서로 양보하던 동고동락의 기억이 새롭다.

엉뚱하고 개성이 넘치는 친구도 많다. 고급 한정식 집에서 깨끗한 재떨이를 앞 접시로 착각하여 음식을 들어먹고도, 태연하게 '여기, 재떨이 하나 주세요'하며 위기를 모면하던 모 농협조합장, 비행기가 후진할 수 있겠냐고 묻자 대뜸 '비행기에 백미러(back-mirror) 있는 거 봤냐?'고 재치를 보이던 친구, 중년이 되어 배운 색소폰 연주로 여름 바닷가의 추억을 선사해주던 어느 한의사. 나는 정말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친구들과 나눈 지란지교의 추억들이 쌓여, 관포지교의 믿음을 준다. 믿음으로 평생을 같이 할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친구 없는 인생은 목격자 없는 죽음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 친구와 나누는 즐거움을 어디다 비할까.

문득 유안진 교수의 글이 떠오른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 마시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친구,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의 우정이 애정으로 혼동되고, 그 애정도 또한 우정처럼 여겨졌으면 한다.

이석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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