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봄날은 간다

산과 들에 번져 오르던 봄기운에 못내 겨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투정을 부리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름이다. 지구 온난화로 봄이 자꾸만 짧아지다 보니 단오가 열흘이나 남았는데도 한낮 기온이 30℃에 육박한다.

봄이란 그렇게 문득 왔다가 속절없이 가는 것인가. 겨우내 그리던 춘정(春情)에 젖어 '봄이 봄 같지 않다'고 푸념을 했는데, 5월의 연초록빛에 봄 햇살이 성글어지자, 우리는 또다시 '봄날은 간다'고 아쉬워한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리….' 김소월의 시노래를 읊조리며 봄의 무상함을 노래하거나, 가수 조용필과 한영애가 리바이벌해 부른 '봄날은 간다'란 노래의 구성진 음색과 애틋한 노랫말에 가슴 저리기도 한다.

엷은 봄바람도 자연의 축복이라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은 화려한 봄날일수록 담배 연기처럼 허망하게 스러진다는 자연의 섭리를 안다. 영원할 것 같은 부귀와 권세를 좇아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며 '춘래불사춘'이라 넋두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봄의 무상함을 먼저 깨달을 일이다.

중국을 방문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 에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애써 회동한 것은 후계 승인 외교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991년 김일성 주석이 방문했던 이곳에서 북-중 관계를 위해 북한 후계 구도 안정화를 역설하며 장 전 주석에게 모종의 역할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러나 민심을 거스른 채 기울어가는 국운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놓아도 가는 봄을 잡지는 못하는 것이다. 계절이 그렇고, 인생이 그렇고, 권력이 그런 것이다. 수백만 인민들의 굶주림 속에 시대착오적인 왕조 체제 유지를 위한 필사의 노력이 차라리 애처롭다. 최근 중동의 민주화 물결에서도 보듯, 민중은 권력에 순응하기만 하는 맹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어느덧 넘실대는 민의의 격랑은 권력을 뒤집어엎기도 하는 것이다.

남명 조식이 500년 전에 설파했던 민암부(民巖賦)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배는 물 때문에 가기도 하지만, 물 때문에 뒤집히기도 한다, 백성이 물 같다는 말은, 예로부터 있어 왔으니,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백성은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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