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시각으로 신문과 방송은 같은 미디어지만 프로야구 세계에선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매체로 다룬다. 방송은 동업자며 아군이지만 신문은 감시대상인 적군인 것이다.
방송은 막대한 중계권료를 지불해 구단재정에 보탬도 되고 야구산업의 번창을 위해 편성과 제작을 아끼지 않아 협력자로 인식되지만 신문은 어두운 구석을 파헤치거나 경기내용이나 구단 운영, 선수 복지 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기사를 생산해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불편한 존재로 여겨질 때가 많다.
가령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될 이슈가 있어도 중계방송을 하는 캐스터나 해설자들은 결코 들추지 않는다. 수입원이 잘못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가끔 해설위원들이 대구야구장의 시설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빨리 전용구장을 만들어 달라는 구단을 위한 지원사격인 셈이며 그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해설위원들은 공석이 된 커미셔너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결코 코멘트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문기자나 칼럼니스트들은 평소에는 재미있는 장외 이야기를 다루면서 유익한 동반자인 척하지만 언제 돌변해 문제되는 현안들의 정곡을 찌를지 모른다.
사실 신문매체에서 프로야구란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신문에서 다루는 각종 분야 중 한 분야일 뿐이며 기자에게 프로야구란 기자의 시각에 따라 어두운 구석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KBO나 구단의 홍보 관계자에게 야구기자란 여간 조심스러운 존재가 아닌 것이다. 요즘엔 공평해졌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엔 방송 관계자와 신문기자 간에 차별대우가 빈번했다.
어느 더운 여름날 고참 아나운서가 라디오 중계방송을 하던 중 마시던 물이 바닥났다.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아 중계실은 찜통에 가까웠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목으로 땀이 흘러내려 그는 연방 수건으로 닦으면서 애타게 시원한 물을 찾았다.
그러나 방송 중에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고 주위에 사람을 찾았으나 마침 아무도 없었다.
어느덧 방송은 끝났지만 그는 거의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화가 잔뜩 난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구단 관계자를 찾았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복도에도 기척이 없이 조용했다.
여기저기를 기웃하다 때마침 기자실에 들어섰는데 그는 그만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탁자에는 과일과 빙설이 놓여 있었고 실내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시원했던 것이다. 그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무리 소홀한 대접을 받아도 방송은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었던 기막힌 동업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야구장에서 경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중계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에어컨도 설치돼 있다. 구단에서는 수시로 음료수와 다과를 제공하고 투수가 바뀌거나 홈런이 터지면 실시간 관련 자료들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계실에서 '적과의 동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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