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지난여름 때로 몰려온 우환을 겨우 치르고 삼재가 들었다는 말 한 마디에 뱀띠 부적 하나 똘똘 말아 끼운 단풍나무 목걸이 걸고 다니다 그만 잃어버렸는데요 다시 재앙의 복판에 선 듯 불안을 안고 살다 아무래도 안되겠다며 떠난 밀양 어딘가에 있다는 그 절, 나 참, 대단한 큰스님이 써준 것도 아니고 십이지신마다 수십 개 수백 개씩 복제되어 걸린 불교용품점에 그걸 구하러 간 것이 한심하다가 문득,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곳이 없다네' 벽에 붙은 한 구절에서 그만 붉어지는데요
눈발 뚫고 가는 그 길이 바로 부적 입디다요
권선희
"철학관을 나오는 여자의 뒷모습 같은 저녁이 온다"라는 문예창작반의 한 예비시인의 섬세한 글이 생각나네요. 철학관엘 간다는 건 말하자면 부적 같은 행위일 거예요. 또한 부적, 그거 세상이라는 재앙, 삶이라는 재앙, 원수 같은 관계라는 재앙들을 어떡하든 견디어 보려는 노력 아니겠어요?
가도 가도 세상은 벌판이더라, 먼지바람이는 사막이더라. 내 한 몸이 아니어서 멈출 수도 없는 이 운명을 어디 한번 의지하고자 손 내미는 부적. 시인의 밀도있는 문장을 따라가다가 나도 몰래 불교용품점까지 들어와 버렸네요. 부적을 쓴 사람이 아하, 큰 스님이 아니면 어떤가요, 동네 아저씨면 또 어떤가요.
화장실 안에 붙은 금언 하나에도 우리의 운명이 바뀌는 걸요. 우리를 울게 하는 건 결국 진정성 아닌가요. 사실 이 세상 험난해도, 가진 것 없어도, 진정성 하나 믿고 여기까지 온 걸요. 벽조목 없으면 어때요? 벽에 붙은 이 한 구절,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곳이 없다"는 이거야말로 영락없는 부적이네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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