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은 감독이 주는 또 다른 메시지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그의 영화 적재적소에 클래식을 잘 녹여 넣기로 유명하다. 특히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년)는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은 우주의 신비에 대한 진실을 찾는 위대한 SF이자, 한편의 철학서, 서사시와 같은 영화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메시지와 함께 1968년도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특수효과가 전혀 손색이 없다.
원시인들이 처음 동물의 뼈를 도구로 쓴 것이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첫 장면이 끔찍하다. 이제 세상을 지배하게 된 원시 인간이 땅을 내리치며 포효를 지르고, 뼈를 공중으로 던지자 그 길쭉한 뼈가 하얀 우주선으로 변한다. 단숨에 시공을 초월해버리는 놀라운 편집이다.
이제 암흑뿐인 우주공간. 우주선은 천천히 돌아 거대한 원형 우주정거장에 진입한다. 미지의 세계, 호기심과 불안이 혼재된 고독의 공간이다. 이때 너무나도 낭만적인 왈츠곡이 흐른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이다. 19세기 오스트리아 빈을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의 물결이 미래의 우주를 감싸 안는다. 유영하는 우주선과 함께 춤을 춘다.
곧 닥칠 위기에 대한 전주곡 치고는 너무나 귀에 익고, 또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워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너무 행복하면 불안하듯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존재의 의문을 묻는 효과적인 메타포로 쓰였다.
조셉 루빈 감독의 '적과의 동침'(1991년)에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나온다. 이 영화는 의처증 남편에게 벗어나기 위한 한 여인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에서 이 곡은 남편이 등장할 때마다 배경 음악으로 깔린다. 그 많은 교향곡 중에 왜 하필 베를리오즈의 것을 썼을까.
'환상 교향곡'은 절망에 빠진 베를리오즈의 격정이 담긴 곡이다. 병적인 감수성을 지닌 젊은 열혈 음악가가 짝사랑의 절망 때문에 아편을 먹고, 혼수상태에서 단두대를 넘나들며 환각의 세계에 빠진다는 것이 곡의 줄거리이다. 아내를 소유하려고만 했던, 적과의 동침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사랑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는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을 통해 미완성된 체제를 고발하고, '위험한 정사'(2009년)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의 아리아로 복수를 다짐한다.
톰 행크스의 연기가 돋보이는 '필라델피아'(1993년'사진)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에이즈에 걸려 부당하게 해고당한 톰 행크스가 변호사와 만나 자신의 처지를 얘기하면서 아리아를 듣는 장면이다. 이때 그가 듣는 곡이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의 '나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이다. 세기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곡이다. 폭도들에 의해 집이 불타는 절망의 순간을 그린 아리아와 곧 생을 마감해야 할 주인공의 절망과 고통이 잘 어우러져 가슴을 메게 한다.
김중기 객원기자
댓글 많은 뉴스
[기고] 박정희대통령 동상건립 논란 유감…우상화냐 정상화냐
정청래, 다친 손 공개하며 "무정부 상태…내 몸 내가 지켜야"
양수 터진 임신부, 병원 75곳서 거부…"의사가 없어요"
이재명, 진우스님에 "의료대란 중재 역할…종교계가 나서달라"
‘1번 큰 형(러시아)과 2번 작은 형(중국)’이 바뀐 北, 中 ‘부글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