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불면증(황성희)

너무 잠이 오지 않아서 내 다리를 풀어 보기로 했어. 새끼발톱을 잡고 쭉 당기니까 꼬불꼬불 살색 실이 오르르 풀려 나더니 발 하나가 순식간에 풀어지지 않겠어? 풀린 실을 돌돌 손에 감고 실뭉치를 만들다가 허벅지를 반쯤 남겨두고 대바늘을 꺼냈어. 잠이 올 때까지 강아지를 떠 보기로 했지. 분홍빛 혓바닥부터 말이야. 근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방바닥에 혀를 날름대는 푸들 머리만 덩그렇게 놓인 거 있지. 머리까지 뜨다 그만 잠들었나 봐. 잠깐, 풀려 나간이 다리로 학교는 어떻게 갈 거냐고? 글쎄, 널 다 뜨고 남은 실이 있는지 어머니께 한번 여쭤 볼까? 이 다리를 다시 뜨게. 어머니는 어제 아버지를 풀어 밤새 널 떴거든. 그런데 매듭을 덜 지우셨나? 올이 풀린 속눈썹 하나가 바람에 자꾸 나풀거리네.

시에서 마지막 남는 건 결국 언어라고 하더군요. 시인은 언어에 봉사하는 사람이라는군요. 언어에 봉사한다는 뜻은 의미나 관념 이전에 언어가 가진 원래의 뜻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말이란 원래 불완전하여 하면 할수록 의미가 왜곡되기 일쑤지요. 위의 시처럼 가볍게 말장난하듯이 엮어보는 것. 그런 일들이 오히려 언어를 가볍고 순수하게 하지요. 동일시현상이 있네요. 뜨개질 감과 사람, 그리고 푸들과 실뭉치의 치환을 보세요. 뜨개질하는 행위를 현실의 상황과 중첩시키며 무의미한 이런 행위가 불면증을 불러온다 말하는 걸까요. 불면증이 이런 행위를 하게 한다 말하는 걸까요.

그러다가 변주가 일어나죠. 어머니는 밤새 아버지라는 존재, 즉 권위를 풀어서 너를 짰다는 대목 말이에요. 아뿔싸 그런데 매듭 지우는 걸 그만 잊으셔서 아버지 여전히 나풀 살아계신다 하네요. 나풀, 이 단어 중요하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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