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밥상과 밭의 거리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라는 개념이 있다. '쌀과 채소, 고기 등을 소비하는 밥상과 생산지의 거리'라고 보면 된다. 일본 농림수산정책연구소가 식량의 운송과 운송거리를 정량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만든 개념으로 식량을 운송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 것이다.

'운송량 × 운송거리'를 말하며, 톤킬로미터(t·㎞) 혹은 킬로그램킬로미터(㎏·㎞)로 나타낸다. 예컨대 5t의 식량을 1천㎞ 운송할 때 푸드마일리지는 5×1,000, 즉 5천 톤킬로미터가 된다. 유럽에서 쓰는 '푸드 마일'에서 따온 개념인데, 푸드 마일이 '거리와 신선도'를 주목한다면 '푸드 마일리지'는 거리와 탄소 배출량에 주목한다.

식량의 해외의존도를 표시할 때 흔히 '식량 자급률'이라는 개념을 쓴다. 그러나 여기에는 운송이라는 요소가 빠져 있다. 국내생산물이냐 해외생산물이냐를 따질 뿐, 그 생산물이 얼마나 먼 거리를 돌아 우리나라 밥상에 도착하는지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에서 생산된 식량을 먹는 것과 멀리 미국이나 브라질에서 생산된 식량을 먹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환경부담의 차이가 있다. 푸드 마일리지가 길수록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나고, 그만큼 환경에 더 해롭다.

2001년 일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푸드 마일리지가 가장 긴 나라는 일본, 한국, 미국, 영국, 독일 순이다. 당시 일본의 1인당 푸드 마일리지는 7천100t·㎞였고, 한국은 약 6천t'㎞였다. 3위인 미국은 뚝 떨어져 일본의 약 1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그만큼 미국의 식량 자급률이 높거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남미 등에서 많이 수입했다고 볼 수 있다.

푸드 마일리지가 짧다고 무조건 환경 친화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식량의 생산과 운송, 소비, 폐기 등 모든 단계에 에너지가 투입되는데, 푸드 마일리지는 단순히 식량의 운송에 투입되는 에너지만 나타낸다. 근교에서 재배된 채소라고 하더라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많이 쳤거나 비닐하우스에서 생산했다면 자연 상태에서 생산한 먼 나라의 농산물보다 환경에 더 해로울 수 있다.

장바구니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내복을 입는 것만이 친환경 생활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작물,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작물을 더 많이 먹는 것만으로도 녹색생활에 기여하는 셈이 된다. 나아가 텃밭이나 아파트 발코니에서 상추, 배추, 알타리 무, 방울토마토, 감자를 직접 키워서 먹는다면 '친환경 전사'라고 할 만하다.

베란다나 마당에서 대체 뭘 얼마나 키워야 식구들 수요를 충당할까 싶지만, 우리가 자주 먹는 채소의 가지 수는 의외로 많지 않다. 그리고 텃밭과 발코니 정도만 해도 한 식구 먹기에 충분한 채소가 나온다. 가장 많이, 가장 자주 먹는 채소 3, 4가지를 골라 재배해보자. 사 먹는 채소의 양을 눈에 띄게 줄일 수 있다. 직접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면 세상이 깨끗해질 뿐만 아니라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직접 키운 채소를 다 먹느라 육류소비를 줄이는 것도 환경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아울러 아파트 화단과 옥상, 학교정원, 건물의 야외정원 등에 화초대신 농산물을 키우는 생활을 권하고 싶다. 일과 뒤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여러 식구가 나눠 먹어도 좋을 만큼 채소를 수확할 수 있다. 저녁에 먹을 쌈상추를 마트 대신 회사 옥상에서 따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조두진<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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