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일간지 한쪽에서 '참새를 태운 잠수함 함장 구자룡 별세'라는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에게도 구자룡이라는 이름과 참새를 태운 잠수함은 생소할 테다. 하지만 한국대중음악계에서 구자룡의 존재와 참새를 태운 잠수함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포크문화의 새로운 시작을 연 사람이고 집단이기 때문이다.
한국포크음악은 근래 회자되는 '세시봉'을 비롯해 '서울 YWCA 청개구리', 그리고 '참새를 태운 잠수함'으로 이어지는 집단적 흐름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 참새를 태운 잠수함은 1980년대 중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인권, 이주호, 강인원, 곽성삼, 한돌 같은 사람들이 있었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전신인 '서울대학교 메아리'도 있었다. 참새를 태운 잠수함은 '순수하고 진실된 노래로 혼탁한 사회를 정화시키고 경종을 울리겠다'는 선언문에서처럼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던 집단이었고 그 수장이 구자룡이었다.
참새를 태운 잠수함은 DJ로 이름이 높던 구자룡과 동생 구자형이 주도적으로 모임을 이끌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은 신촌과 명륜동으로 나눠져 활동했다. 말이 활동이지 카페 같은 곳에서 노래 부르고 밤이면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었는데 신촌에는 이정선과 엄인호, 이광조, 김현식이 있었고 명륜동에는 전인권, 나동민, 남궁옥분 등이 있었다. 이 중 명륜동파들이 참새를 태운 잠수함에서 활동하게 된다.
참새를 태운 잠수함은 분명한 의식이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 식의 포크음악' 또는 '한국적인 포크음악'을 추구했다. 세시봉처럼 팝송을 부르면 모임에 끼지 못했고, 흔히 '빠다끼'라고 불렀던 팝송풍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대접받지 못했다. 이런 고집은 1979년부터 1980년 사이 주로 발표된 출신 가수들의 앨범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성현'이라는 가명으로 앨범을 낸 곽성삼이나 유한그루, 한돌의 음반은 한국적 정서의 포크음악을 표현한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이후 이종만, 명혜원 같은 가수들이 중심이 되면서 록이나 블루스의 요소가 들어오긴 하지만 이는 표현 영역의 확산쯤으로 여길 수 있다.
참새를 태운 잠수함이라는 이름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다. 잠수함 속에서 침몰을 가장 먼저 직감하는 토끼처럼 예술가 특히 대중예술가들이 사회의 위험과 부조리를 감지하고 고발해야 한다는 뜻에서 구자룡이 지은 이름이다. 가수가 중심이 되면서 토끼 자리에 참새를 바꿔놓은 것이다.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던 구자룡은 영면했지만 이 땅 어디선가 참새가 노래하길 소망하고 있을 것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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