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살, 개인적 문제라고? '예방 캠페인'같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해!

OECD 자살률 1위, 극단적 선택 막을 수 없나-전문가 대담

전문가들은 자살을 개인적 문제로만 방치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누구든지 쉽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살예방 교육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김기정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장,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
전문가들은 자살을 개인적 문제로만 방치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누구든지 쉽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살예방 교육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김기정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장,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

OECD국가 중 자살률 압도적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한국. 매스컴에서는 연일 '자살'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올 들어서는 세상의 주목을 받는 자살이 잇따랐다. 대표적 엘리트 집단의 하나인 카이스트에서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자살했고, 야구선수와의 스캔들이 불거졌던 송지선 아나운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SG워너비 출신 가수 채동하 씨도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프로축구 승부조작과 관련됐던 축구선수 정종관 씨도 자살했다. 성주에서는 4명이 집단자살하면서 "죽는 게 죄스럽지 않다"는 유서를 남겼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 사망률(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은 2006년 23명이던 것이 2009년에는 31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자살자수도 2006년 1만688명이었지만, 2009년에는 1만5천 명을 넘어섰다.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자살. 이제는 자살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7일 오후 매일신문 회의실에서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과,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 김기정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장 등 전문가들과 함께 자살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할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자살이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국가적 문제로 봐야하는가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논의 후반에 자살 예방을 위한 다양한 방법 제시가 좀 더 쉬울 것 같다.

▶김성미=인간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자살 사고를 가지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연결 끈이 느슨해진 사람들이다. 상담을 해보면 '죽고싶다'고 말을 하는데 그를 붙잡아 줄 보호자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적 연결고리가 약해졌을 때 자살이 실행으로 이어지기 쉽다. 자살자들의 90% 이상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우울증의 원인은 생물학적 원인과 개인의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개인적인 원인이 강한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혼자 병원에 와서 약먹고 상담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면서 내 개인적인 끈을 연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적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지호=인류의 역사에 있어 어느 문화, 어느 시대에도 자살은 있었다. 그렇다고 보면 자살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문제'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자살이 만연한 것은 사회적 요인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원인은 소통의 부재다. 옛날에는 우물가에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통해 속에 쌓인 말들을 털어낼 기회가 있었던 반면 아파트 문화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공통적인 문제를 가지게 됐다. 여기에다 급속도로 진행된 경제적 발전 때문에 허탈과 빈곤감을 느끼는 이들이 급증했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미국에서 주별로 자살률을 분석해보면 삶의 질이 가장 높은 유타주가 1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하와이가 2위다. 상대적으로 뉴욕주는 자살률이 낮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무력감과 빈곤감의 압박이 심해진 것이 자살률을 높이는 큰 원인 중 하나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살은 충동적으로 발생하는 사고가 아닌가? 아니면 끊임없이 자살만을 생각하다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사례가 많은가?

▶김기정=자살한 사람의 경우 상당수는 이미 몇 번 자살을 시도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손목 등에 주저흔(자해할 때 주저해서 생기는 흔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꽤 많이 본다. 이런 사람들은 오랫동안 죽음을 생각해 온 사람들이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의 경우에는 주변인들이 각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지만 문제는 이 경우 이미 가정에서는 보호자들조차 이런 상황에 적응되고 지쳐 있어 무감각해진다는 것이다. "쟤가 저러는 게 한두 번이냐", "지난번에는 그것보다 더했는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동안 애꿎은 목숨을 또 놓치는 경우가 흔하다.

▶김성미=하지만 '충동적' 자살도 꽤 많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경우 신체 리듬이 급속도로 하락한 순간에 술이라던가 약물, 분노를 치솟게 하는 상황 등이 발생하면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자살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그 순간 전화를 걸어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해 주는 누군가만 있었더라도 이런 충동적 자살은 막을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욕구가 극으로 치닫는 '트리거(trigger'방아쇠) 포인트'만 넘기면 그 사람은 다시 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덮이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 때문에 오히려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많지 않겠는가. 삶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김성미=우리나라에서는 죽은 자는 신(神)이 되는 사고방식이 잠재돼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의 경우는 성적이 안나와서 죽고싶다는 소리를 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되는데 이런 것이 자기징벌적 자살이다. 죽음으로 죄사함을 받으려는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경산시 공무원의 죽음 등에서 보듯이 정치적 의미나 항변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나, 복수의 의미를 담을 수도 있다.

▶김지호=문제는 자살이 사회적인 표현이 되는 경우다.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자살 역시 사회적인 표현으로 봐야하는 사례라고 본다. 내가 한쪽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내가 죽으면 세상이 나를 이해해주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죽음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부분이고 이런 인식이 형성되도록 하는 것은 자살을 더욱 부추길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자살이 사회적 표현의 방법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하고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 언론의 자살 보도 문제도 심각하다. 방법까지 워낙 자세하게 묘사를 하다 보니 오히려 '학습효과'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많다.

▶김기정=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자살을 할 수 있는 모범답안들이 너무 난무한다. 굳이 다룰 필요가 없는 부분까지도 정확하게 표현을 하는 것이 문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살이 미수에 그쳐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할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쓰면 확실히 죽느냐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게 된다. 이런 심리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어떤 방법으로 죽었다더라는 보도는 학습효과가 분명하다.

▶김성미='베르테르 효과'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죽고 싶은 마음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면, '이런 사람도 죽는데 나도…'라는 심리적 동조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요'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할 정도다.

▶김지호=수법에 대한 모방은 죽으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죽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 그걸 보고 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해서 누가 죽었다더라 식의 정보는 죽음에 대한 접근성을 어떻게든 높여주는 방법이 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자살을 막을 방법은 있는가?

▶김기정=우리나라에서는 심적으로 어려울 때 기댈 곳이 없다. 이 때문에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제도적으로 카운셀링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정신과 가면 '쟤 미쳤다더라'식의 손가락질을 받는 문화도 문제다. 누구나 감기를 앓으면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듯이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을 때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만 만들어져도 자살의 상당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

▶김성미=자살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미리 성교육을 시키듯이 어떤 사람들이 자살률이 높은지, 어떤 정신적인 요인이 자살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아예 유방암 예방을 위한 분홍리본 캠페인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자살예방 캠페인을 활성화하고 드러내놓고 논의를 하는 분위기도 좋을 것 같다.

▶김지호=사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가족도 어떻게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지를 위한 사회안전망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자살률이 급증하게 된 데 대한 사회적인 변화가 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시급하다고 본다. 앞으로 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이로 인한 사람들의 심리적 압박은 더욱 심각할 텐데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정리'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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