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할 때 자주 인용하는 문구가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표면은 바뀌었을 것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이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의 한순간 선택이 로마의 운명을 갈랐고, 그 뒤 세계 역사도 바뀌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결국 클레오파트라-안토니우스 동맹을 깬 옥타비아누스가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로마 최고 전성기의 문을 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된 것도 클레오파트라의 선택이라는 사소한 일에서 출발한 셈이다.
반값 등록금 문제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처음 언급한 지 20여 일 만이다. 사실 이 문제는 당시 상황을 보면 사소한 일이었다. '사소한'이라는 뜻은 그저 여당 원내대표가 된 기념(?)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을 한 번 추진해 보겠다는 극히 원론적인 말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는 재원 마련 방안이나 당정 간 협의도 제대로 없었던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 안은 즉각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야당이 내년 선거를 겨냥한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면서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반전했다. 사립대의 적립금 규모가 10조 원대에 이르고, 그 상당 부분이 등록금을 빼돌려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촛불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야당 대표까지 반값 등록금 추진을 선언했다. 한국사립대학교총장협의회는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내년도 등록금을 10% 인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립대로서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황 원내대표의 반값 등록금 추진 발표가 없었더라면 싶을 것이다. 부도덕한 적립금 쌓기와 재단의 법정 전입금, 구조 조정, 부실 대학 퇴출 문제가 거론됐고, 등록금 사용처에 대한 감사원의 대대적인 감사까지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일파만파로 커지리라고는 황 원내대표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의 코의 높낮이와 관계없이 역사는 스스로 자신의 궤도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반값 등록금 사태는 수없이 어긋나게 돌아가는 우리나라 역사의 톱니바퀴 중 작은 하나가 겨우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소한 일이 어느 정권도 손대지 못한 사학재단을 바로잡는 기폭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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