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서부고 학생 20여명 현미채식 급식 실험 한 달째

고기 안먹는데도 몸은 되레 가뿐…"화도 덜 내고 정리정돈도 잘해"

서부고등학교 학생 25명은 54일간 현미채식을 하며 몸과 학습능력 등의 변화를 살펴보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서부고등학교 학생 25명은 54일간 현미채식을 하며 몸과 학습능력 등의 변화를 살펴보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 서부고등학교의 저녁 급식시간. 20여 명의 학생들이 급식 식당 한쪽에 따로 마련된 급식코너로 간다. 그들이 식판에 담는 음식은 현미밥과 두부, 삶은 감자, 멸치 대신 유부를 넣어 만든 야채국이다.

이 아이들은 지금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자발적 실험을 하고 있다. 5월 12일부터 7월 4일까지 54일간 현미밥과 채소를 먹는 '두뇌음식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 이들은 이 기간 동안 고기는 물론이고 생선, 우유, 멸치 등 육식 음식과 떡, 빵, 가공음식 등을 일절 먹지 않는다.

이제 실험 진행 한 달째. 아이들을 만나 현미채식 실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건강을 위해 검사를 한 번 받아보고 싶었어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황선웅(18) 군은 건강을 위해 이번 실험에 자청했다. 부모님은 처음엔 "한창 클 나이에 왜 고기를 안 먹고 채소만 먹느냐"고 말리셨지만 지금은 채식 반찬을 따로 준비해주신다. 여드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 한 달간 3, 4㎏ 정도 체중도 줄었다.

권정학(18) 군은 한 달간 눈에 띄게 피부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예 엄마도 같이 현미채식에 도전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박줄기(18) 군은 엄마가 집에서 함께 현미채식을 하고 있어 식사 하기가 훨씬 쉽다. 박 군은 보통의 몸매이지만 현미채식 이후 군살이 빠진 것 같아 몸이 가벼워졌다.

여학생들의 경우엔 현미채식이 주는 변화에 더 민감하다. 이현선(18) 양은 집중력이 높아질 것 같아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피부가 좋아지고 살이 빠지고 있어 만족스럽다. 하지만 주변에서 고기를 먹고, 또 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고역이다. 이 양은 "가족들이 일주일에 한 번 치킨을 시켜먹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먹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기가 어렵다"면서 "같은 밥상에 앉아 고기를 외면하긴 쉽진 않지만 그래도 살이 빠져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김소현(18) 양은 한달새 5㎏이나 빠졌다. 간식을 줄이니 돈을 쓸 일도 없다. "평소 간식을 많이 사먹는데 간식을 끊으니 돈도 절약되고 살도 저절로 빠지니 만족스러워요."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삶은 감자를 처음 먹어본 학생도 있다. "제가 원래 편식이 정말 심했거든요. 채소는 아예 안 먹어서 저 스스로도 걱정되더군요.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을 듣고 선뜻 자원했어요." 도현지(18) 양은 생애 처음으로 삶은 감자를 먹어본 이후 한 달간 채식을 잘 지켜오고 있다. 지금은 못 먹는 채소가 거의 없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평소엔 속이 좋지 않고 몸이 축 처진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몸이 가볍고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하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은 밥을 먹는 시간도 훨씬 길어졌다. 평소 5분 이내로 급식을 뚝딱 해치우던 아이들은 현미채식을 한 이후 20분 이상 천천히 식사한다. 현미를 꼭꼭 씹어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실험에는 선생님들도 동참했다. 유영군 교사는 "현미를 꼭꼭 씹어 먹다보니 국물은 거의 안 먹게 되고 음식도 자연히 싱겁게 먹게 돼 건강관리가 저절로 된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꾸준히 현미채식의 보급을 위해 노력해오던 대구녹색소비자연대의 아이디어와 서부고등학교 신만석 교사의 열정이 만나 시작됐다.

"올해 환경 부서를 맡게 되면서 교내 환경뿐만 아니라 음식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식생활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구조적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채식을 시도하게 됐어요."신 교사 역시 현미채식을 하면서 혈압이 낮아지고 몸의 건조증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기존 '건강'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던 현미채식에 관한 논의를 집중력 저하, 비만, 학습능력과 연관시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 그 결과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은 현미채식 시작 전후 혈액검사, 체지방분석, 집중력 테스트 등을 통해 몸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체크한다. 이번 프로그램에 사용된 급식 재료는 모두 대구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통해 후원을 받았다.

실제로 중간 토론회를 통해 접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한 학부모는 "매일 같이 집에 오면 짜증을 부리던 아이가 어느덧 짜증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고, 또 다른 학부모는 "평소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자기 방을 치우지 않던 아들이 현미채식 이후 시키지 않아도 방을 정리정돈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아무래도 먹을거리와 성격이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은 일회성 성격이 강해 실험 기간이 끝나면 학생들이 현미채식 급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안재홍 사무국장은 "이제 학교 급식에도 채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사무국장은 "구제역으로 고기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채식을 해보자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모든 아이들이 채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채식 식단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청에서 관심을 기울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교육청 보건급식담당자는 "현재 아이들은 하루라도 육류 반찬이 나오지 않으면 불만이 높아질 정도로 육식을 좋아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요즘 건강식을 선호하고 있으니 전통식문화와 자연식 위주로 급식 식단을 짜는 방안을 간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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