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골 기록은 달성, 최고령 어시스트 기록 눈앞, 40-40클럽 코앞, 500경기 출장 턱밑'.
대한민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최고령에 관한 새 역사를 쓰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 수비형 미드필더 김기동(1972년생'만 39세 5개월) 선수. 올해만 벌써 3번 상대팀 골네트를 갈랐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최고령 골 경신을 한 데 이어 또 다른 2골 모두 최고령 골 기록 경신의 순간들이었다. 대전 시티즌 최은성 골키퍼가 갖고 있는 최고령 어시스트(골키퍼가 찬 공이 공격수에게 전달돼 득점으로 바로 연결) 도전도 다음달 이후부터는 김 선수가 어시스트를 하는 순간 최고령 어시스트의 주인공도 최고령 골을 기록한 선수와 같은 인물이 된다.
만 20년 선수생활의 훈장이라고 할 수 있는 40-40클럽(골-어시스트) 가입도 올해 무난히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38-41로 올해 리그가 끝나기 전까지 2골만 더 넣으면 된다. 현재까지 공격수만 10여 명이 40-40클럽에 가입해 있지만, 미드필더로는 김 선수가 처음이다. 프로 500경기 출장도 7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지만 10년 동안 줄곧 포항스틸러스에서의 선수 생활로 인해 가족 모두 포항에서 살며, 앞으로도 생활 근거지를 이곳에 둘 예정이다. 프로에서만 20년, 놀랍도록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김기동 선수. 포항의 황선홍 감독과도 선수 생활을 함께했으며, 네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김 선수를 보면서 솔개를 떠올렸다. 인간의 수명과 비슷하게 70년 정도 사는 솔개는 40년쯤 되면 산 정상에 올라가 무뎌진 발톱, 부리를 바위에 쪼아 뽑아낸 뒤 새로 돋아난 '무기'로 새 삶을 시작한다. 후배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올해 김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서 '회춘(回春)했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는 "멋모르고 뛰기만 했던 20대 선수시절보다 전체적인 경기 흐름에 맞춰 움직이는 지금이 덜 힘들다. 이게 경륜이겠죠"라며 활짝 웃는다.
현역 프로선수로는 인간 승리이자 포항의 전설이 되어 가고 있는 김 선수를 16일 포항에서 만났다. 그는 점심 때 대구에서 온 기자를 자신의 단골 횟집으로 데려가 특미 물회(1인당 2만원 상당)를 한턱 쏘기도 했다.
◆20년 프로 생활, 10년 포항에서
김기동 선수는 자신의 팀 소속 황선홍 감독과 프로에 뛰어든 해는 똑같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한 김 선수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2년 동안 포항에서 뛰다가 유공으로 옮겼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3년 다시 친정팀인 포항으로 옮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팀과 영욕을 함께하고 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캡틴(주장) 역할을 잘 수행해 팀워크를 구축하는 맏형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 별명 모르시죠? '포항 긱스'인데요.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트 유나이티드의 최고령 선수 라이언 긱스에 빗대 팬들이 지어준 별명이죠. 요즘 큰일 났습니다. 긱스(김 선수보다 한 살 어린 1973년생)가 온갖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어 제 이미지도 그렇게 비치지 않을까 걱정이 많습니다. 팬 여러분! 이제 '포항 긱스'라고 플래카드를 써서 들고 오지 마세요."
이 얘기를 하면서 김 선수의 선한 눈빛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20년 동안 현역 선수로 뛰면서, 이젠 그라운드에서 자신보다 15~20년 어린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리며 호흡하다보니 벌써 달관의 경지에 이른 표정이었다. 이때 기자가 댓바람으로 "화를 아예 안 내는가요?"라고 묻자, 자신있게 "네!"라고 답했다. 실제 김 선수는 중학교 시절 너무 많이 맞아서(엉덩이 60대) 축구를 그만 두려한 적도 있었지만 후배 선수들에게 폭력적인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제 아들 준호도 유소년 축구클럽에서 축구를 배우고 있는데, 아빠가 자랑스러운가봐요. 아직도 현역 선수로 뛰며 골도 넣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한마디로 아들이 친구들한테 말발이 서는 거죠.(우쭐한 표정을 짓는 김 선수). 아내(조현경 씨)도 포항에서 폭넓게 활동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도 많이 해요. 물론 내조도 100점이죠. 아! 제 딸은 김하늘입니다. 언급 안 하면 섭섭할라? 다 써 주세요."
김 선수는 포항이라는 도시를 고향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올해까지 뛸지, 내년까지 뛸지, 후내년까지 뛸지 모릅니다. 하지만 포항스틸러스 구단에서 배려만 해 준다면 어떤 역할이든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분명한 건 체력적으론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경기 감각도 뛰어나고요."(이번에 쑥스러운 표정) 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2004년에 현역 은퇴할 뻔 했죠'
'20년 동안 왜 위기가 없었겠냐'는 생각으로 대뜸 물었다. "프로 선수로 뛰면서, 최대 위기는 언제였습니까?". 김 선수는 이내 "2004년"이라고 한 뒤, 길게 풀어냈다. "정말 선수 생활을 접으려 했습니다. 체력적으로 별 문제가 없었는데도 감독은 조금 뛸만 하면 교체하고, 몸이 풀리기도 전에 교체하고, 전반 뛰고 후반에 잘 하려 마음 다 잡고 나면 교체하고.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변에서도 나이로 인한 체력적인 문제를 제기했으며, 구단 관계자들도 현역 은퇴를 고려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무릎 수술을 위해 독일까지 가게 되니 상황은 거의 최악이었습니다. 그래도 감독과 1대1 미팅을 하며 제 의지를 밝혔죠. 그리고 살아남았습니다. 대단하죠?"
이렇게 은퇴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자 그의 플레이는 더 안정적이고, 지능적으로 변했다. 미드필더로서 공격수에게 찔러주는 패스가 더 정확하고 날카로워졌을 뿐 아니라 팀 주장으로서도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포항의 성적도 그의 개인적인 삶과 굴곡을 함께했다. 2005년도 전기리그 우승, 통합 준우승, 2007년 K-리그 우승과 함께 그해 원저 어워즈 대상(오피러스 1대), 스포츠 토토 MVP 등 상복도 터졌다. 그는 K-리그 MVP를 받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혼잣말로 "경제적으로 보면(상품'상금 등) 다른 상이 좋은데, 그래도 K-리그 MVP가 축구선수로서 명예인데…."
포항스틸러스는 이후로도 잘 나가는 팀이었다. 2008년 FA컵 우승, 2009년 피스컵 우승, 2009년 FIFA Club컵 3위, 올해 K-리그 2위 등. 그 중심엔 최고령 선수이자 골 자주 넣는 미드필더 김기동이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K-리그 승부조작'에 대한 민감한 질문을 하자, "사실 우리 구단에도 안타까운 후배 1명이 있는데 참 아쉽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에 확실히 연루된 선수들은 처벌하되,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슴에 품고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프로선수들이 도매금으로 외면받는 일은 없도록 잘 처리되길 바란다"고 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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