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정치논리와 경제논리

어제 일본에 있는 교수님 한 분과 잠시 통화를 했다. 일본 대지진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는 것인지, 방사능 오염수가 1만t을 넘어간다는데 어떻게 처리를 하고 있고 정화는 가능한 것인지, 일본은 어떻게 전력난을 해결하려 하는지, 일본 경제는 나아지고 있는지?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한 질문들에 대한 답들은 모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물론 지난번 찰스 콜린스 미국 재무부 차관보가 방문했을 때 잠시 나눈 얘기 가운데, 일본 정부와 국민이 이번 여름에 전력난 해소를 위해 상당한 각오와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는 했지만, 그 교수님의 말씀처럼 일본인들이 얼마나 더 줄이고 줄이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가 채무가 GDP의 200%인데다 향후 베이비 붐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일본 경제의 빠른 고령화를 생각할 때, 일본인들은 더 줄이고 아끼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을 버리고 국가의 존립을 위해 얼마나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일본 국민의 경우에서 찾아 보아야 할 것 같다.

알버트 허쉬만이 1970년과 1977년에 집필한 두 권의 책이 있다.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전광일 교수께서 선물해 주신 귀한 책인데, 일단 그 가운데 하나인 '출구, 목소리, 그리고 충성심'(Exit, Voice, and Loyalty)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기 직전에 보았던 행동경제학 관련 댄 에리엘리의 '예측 가능한 비이성적 행동'(Predictably Irrational)이 허쉬만의 글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 제 활동에서 경험하게 되는 '불균형'이라고 하는 부조화는 크게 내적 회복능력에 의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데, 이 자연적 극복 과정이 곧 '출구와 여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출구'는 '경제학'을 '여론'은 '정치학'을 각각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시 풀어서 쓰면, 즉 소비자는 시장에서 자신의 소비를 실망시키거나, 가격을 왜곡해서 부당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제품을 소비하지 않음으로써(출구함으로써) 시장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간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치'를 통한 바로잡기는 투표와 공개적인 항의 표시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며 실질적으로 개인이나 집단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LH공사와 같이 부채 규모가 크고 정책 실패를 통해 국민들에게 많은 부담을 지우는 공공기관의 문제점은 밀턴 프리드만은 '민영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영화'는 곧 자연적 치유 과정에서 나타나는 '출구'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시민 또는 국민들의 정치적 여론이 반영된 '불균형'에 대한 해결책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허쉬만이 강조하는 것은 경제학과 같은 시장논리와 정치학과 같은 비시장적논리가 비록 상호 독립적인 이론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문제 또는 시장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조화롭고 상호의존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장 메커니즘이 보다 '균형'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논리에 의해 경제논리를 지배한다거나 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우선한다는 사회적 '균형'을 흩트리는 결과만을 초래할 따름이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무상'과 '반값'과 같은 쟁점은 경제적 논리와 정치적 논리가 이분법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잠시 생각해도 한강 인공섬인 '둥둥섬'과 '무상'은 충돌하고 있다. '반값'은 사실상 청년실업 문제를 반영한 것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제쳐놓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voice)가 어떤 출구전략(exist)으로 나타날지에 대해서 예측이 불가능하다. 허쉬만이 제안하는 또 다른 변수가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정(passion)과 이해(interest)'라는 변수다. '열정'이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와 융합할 때 군중들의 거친 저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어진다. 하지만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열정'이 보다 성숙한 '이해'의 문제로 진화하고, 동시에 적절한 '출구'(일자리 창출) 전략으로 설득되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선진국과 같은 성숙한 사회로 도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그 시간과 비용이 짧고 적을수록 좋지 않을까? 바야흐로 정치의 시대가 다가오는 듯하다.

경제(출구)와 정치(여론)가 국민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passion)을 국가적 이해(interest)로 업그레이드시켜 주길 기대해 본다.

곽수종<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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