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비오는 날 부침개

"비도 오고 출출한데 우리 전이나 부쳐 먹을까여?" "평상에 나가서 먹어야 제 맛이라!" 아낙들은 화투짝을 내려놓고 회관 앞에 지붕을 올린 평상으로 나가고 부녀회 총무 헐골댁(54)은 주섬주섬 재료를 챙긴다. 분홍색 다라이와 부침가루, 달걀에다 애호박'양파'고추'버섯 등 냉장고에서 잠자던 채소 총출동. 이를 지켜보던 삽을댁(61)은"부침개에 정구지가 빠지면 되냐"며 마당에서 금세 부추를 한 움큼 잘라 온다. 더 필요하면 얘기해여. 내 금방 뜯어 올게여." 평상에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도마를 놓고 아낙들이 빙 둘러앉았다. 부추와 고추는 송송 썰어 널따란 부침개를 부치고 모양을 살려 썬 애호박과 새송이 버섯은 달걀 물을 묻혀 지진다. 회관 앞을 지나던 창말댁(79)은 어디선가 막걸리를 네 댓 병 가져왔다. 물 맑기로 소문난 상주의 대표 막걸리 '은자골 탁배기'다. /"하이고~ 비 덕분에 잘 놀았네. 이번 주에 또 언제 비와여?" 아낙들은 다음 비 오는 날엔 데친 무를 얇게 썰어 '무적'을 해 먹기로 했다.(인용)

며칠 전 농민신문에 실린 '상주 아랫헐골의 어느 여름날'이라는 기사의 일부다. 이런 민족적 유전인자(DNA)가 어디 가겠는가. 장마철로 접어든 요즘, 집집마다 부침개 생각이 많이 나는 모양이다.

지난 주말 태풍 '메아리'의 영향권에 들어간 영남권은 사실상 바깥출입이 어려웠다. 대부분의 사람이 집안에 머물면서 부침개를 떠 올린 모양인데 인지상정이랄까,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는 바람에 인근 마트에는 오전에 부추와 애호박 같은 부침개 재료가 떨어져 상당수가 헛걸음을 쳤다.

이렇듯 '비오는 날 부침개'는 한국민의 기본 정서다. 일부 편의점의 경우 비가 왔던 22일과 26일까지 부침가루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 주 대비 무려 3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부침개와 궁합이 맞는 막걸리, 소주도 30~ 40%씩 증가했다고 한다.

왜 유독 비오는 날 부침개가 생각이 날까. 비가 오면 신진대사가 활발하지 않아 몸을 따스하게 해주는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찾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에도 '부추는 더운 성질을 갖고 있어 인체의 열을 돋우는 보온효과가 있다.'고 했다. 본격적인 장마철이 다가온다. 주말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면 부침개 재료도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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